언젠가 한 신문 사설에서 우리 사회의 극심한 이기주의는 가정과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출세와 물질적 풍요를 위해 공부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남을 위해 공부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안녕과 풍요가 공부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요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라는 취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그저 자신의 삶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나아가 세상의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아주대병원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 남을 돕기 위해 진료하고 연구한다는 의사, 그것도 부족해 직접 봉사회를 조직한 내분비대사내과 정윤석 교수다.
어릴 적 공부를 곧잘 하던 정윤석 교수는 텔레비전 휴먼드라마에 나오는 멋있는 의사나 과학자를 꿈꿨다. 그러다 중학교 다닐 때 누나가 질병으로 돌아간 것이 의사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부친이나 동생의 오랜 지병도 그 길을 선택하는 데 한 몫 거들었으리라 짐작이 되고, 아마 이것이 정 교수가 환자를 대할 때 보이는 깊은 배려심의 근원이지 싶다.
정 교수의 세부전공은 골다공증과 뇌하수체 질환이다. 1994년 아주대병원에 부임한 후 내과, 산부인과, 외과, 가정의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연구모임에 참여하면서 당시만 해도 새로운 영역이었던 골다공증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됐고 1996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석사와 박사학위 논문을 성장호르몬으로 연구한 경험이 있는 정 교수는 신경외과의 협진 요청으로 뇌하수체질환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고, 점점 이 분야야말로 진정한 내분비질환이라는 생각과 함께 뇌하수체질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뇌하수체」가 전신의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고 생식과 발육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치료 효과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교수는 병명을 모르고 5년 동안 심한 저체중에 낮은 체온, 성기능 저하 등으로 고통 받던 한 여인이 쉬한증후군(분만 시 과다 출혈로 뇌하수체에 이상이 생기는 병)임을 알아내 호르몬 치료를 한 후 몰라보게 건강해졌던 모습을 떠올리며 이 분야가 환자의 만족도도 높고 의사로서의 자부심도 커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가 진료하는 환자의 대부분은 골다공증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자여서 자칫하면 정기 검사결과를 확인하고 약 처방하는 사무적 진료 형태가 되기 쉽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 정 교수는 「지금 환자의 입장은 어떨까」를 자주 생각한다. 장기간 병원을 다니는 환자들이므로 자신이 평생주치의가 되어 환자의 건강을 살펴야 한다는 신념으로 환자의 사소한 얘기라도 끝까지 경청하고 찬찬히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더러 오전 진료가 오후 2시, 오후 진료가 저녁 6시가 돼야 끝나지만 그를 잘 아는 환자들은 이해하고 불평 없이 기다린다.
무엇보다 정윤석 교수에 대해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봉사」다.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던 1992년 몽골 의료봉사에 참여한 일을 시작으로 그에게 봉사는 일상이 되었다.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교회 등에서 봉사를 하고 병원에서는 사회사업팀이나 기독신우회가 주관하는 봉사에 꾸준히 참여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환자들을 만나면서 정 교수에게 좀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열망이 생겼고, 2005년에 기독의료인 봉사단체인 서울지역 그린닥터스(현 유니크펄닥터스)의 국내 의료봉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 열망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정 교수가 소속된 그린닥터스 경기지부가 서울지부와 함께 두 달마다 서울 및 경기도 지역 빈곤층 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찾아다니며 무료진료를 했는데, 그 때 다진 아주대학교병원 교직원들의 팀워크가 2007년에 의료봉사동아리를 조직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봉사회는 독거노인이나 맞벌이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의료봉사, 구강검진, 학습지도, 영양지도를 하는 한편 캄보디아 프놈크롬 마을(수원시의 자매마을) 의료봉사, 베트남 의료봉사 등 활동이 활발하다. 매월 의료봉사회와 그린닥터스 경기지부 봉사를 번갈아 하고 있는 정 교수는 실제 준비하는 기간까지 계산하면 한달의 반은 봉사와 관련되어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하는 봉사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 교수는 연구 실적도 국내 상위권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는 그는 매년 6~7개 정도의 임상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탱자나무 열매(지실) 추출물을 이용한 골다공증 치료제 개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좀 더 부작용이 적고 약효가 좋은 약을 개발하는 게 그의 꿈이다. 그뿐 아니라 의과대학에서 임상종합실습운영TFT 위원장과 통합교육과정으로 임상실습입문 책임교수를 맡아 학생들에게 실제적 교육이 되는 임상실습 및 술기, 통합교육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2001년부터 정기적으로 골다공증 건강강좌와 무료골밀도검사 행사를 열고 있다.
환자 진료와 회진, 의과대학생 교육과 임상연구, 그리고 삶의 일부가 된 봉사.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함 없이 훌륭하게 이끌어가는 정윤석 교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 속에 자신의 인생철학이 담겼으리라.
[글] 신미정 / 홍보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