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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미중년(美中年),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

FERRIMAN 2009. 6. 1. 10:24

기사 입력시간 : 2009-05-31 오후 8:38:23
[분수대] 미중년<美中年>
도처에서 ‘미중년(美中年)’ 마케팅이 한창이다. 말 그대로 멋진 중년 남성이 되자는 것. 선봉은 성형외과다. 눈가 주름을 없애는 데는 보톡스가 그만이란다. 탱탱한 볼살은 필러 시술에 맡겨 달란다. 식스팩, 일명 왕(王)자 복근은 지방충격용해술로 완성된다. 미안하지만 죄 틀렸다. 미중년은 현대 의술의 힘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미중년의 뿌리는 ‘오지콘’일 게다. 아저씨를 뜻하는 일본어 ‘오지상(おじさん)’에 ‘콤플렉스’를 더한 조어다. 한참 나이 많은 남성에 끌리는 여성의 심리 또는 그런 성향을 지닌 여성을 뜻한다. 오지콘의 대상이 미중년인 셈이다. 20대 못잖은 피부, 유행의 첨단을 걷는 패션은 미중년과 거리가 멀다. 그저 ‘꽃중년’일 뿐. 이들을 노무(NOMU)족이라고도 하는데, ‘노 모어 엉클(No More Uncle)’이란 요상한 콩글리시의 줄임말이다. 노무족도 꽃중년도 아저씨 층을 새 수입원 삼으려는 기업 마케팅의 결과물에 더 가깝다.

네티즌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미중년이 내뿜는 마력의 요체는 다름 아닌 ‘세월’이다. 우선 주름이 멋져야 한다. 눈가건 입가건 미간이건, 많아도 별 상관 없다. 수트가 잘 어울려야 한다. 배 나오고 다리가 짧을지언정 당당해 보이면 그만이다. 품격 있는 따스함, 권위를 살짝 위반하는 귀여움은 필수. 유머감각까지 갖췄다면 금상첨화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에선 안성기·최민식·조재현·김명민이, 외국 배우로선 알 파치노, 제러미 아이언스, 조지 클루니, 량차오웨이(梁朝偉), 조니 뎁 같은 이들이 첫손 꼽힌다.

요즘은 한발 더 나아가 ‘미노년’이란 말까지 나온다. 최근 폐막한 제62회 칸영화제에서도 한 미노년이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는 소식이다. 홍콩 두치펑(杜琪峰) 감독의 ‘복수’에서 주인공을 맡은 프랑스 록스타 겸 배우 조니 할리데이다. 영화 속 살해당한 손자들의 복수를 위해 분투하는 그의 실제 나이는 예순여섯. 파리지앵들은 그의 주름 가득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이 담긴 포스터 앞에서 좀체 발을 떼지 못했다. 2주 전 파리 출장길에서 여러 차례 목격한 일이다.

인터넷엔 미중년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의 목록도 떠돈다. 아내 흉보기, 수위·청소부 막 대하기, 한 얘기 또 하기, 지하철에서 다리 벌리고 앉기, 거래처 직원에겐 무조건 얻어 먹기. 그러고 보면 미중년의 반대말은 ‘꼰대’ 쯤이 아닐까.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