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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초전도체를 이용한 전기 저장장치

FERRIMAN 2009. 11. 2. 20:31

전기연구원, 세계 최고 수준 '전기 저장 장치' 개발
기준 이상의 전기 생산때 자기에너지로 바꿔 '저축'
부족한 상황되면 '인출'
"풍력·태양광 발전 보완…
안정적인 전력공급 필요한 반도체 공장에도 활용 전망"

궁핍한 상황을 대비해 저축하는 것처럼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를 위한 전기 저장장치가 있다. 전기가 남을 때는 전기를 저장해 놓다가 전기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보유하고 있던 전기를 풀어서 부족한 전기를 충원하는 전기 저장장치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도 전기 저장 장치를 개발했다. 신·재생에너지의 보완장치나 반도체 공장의 전력 공급 장치로 활용될 전망이다.

남는 전기를 자기에너지로 저장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는 풍력, 태양광 발전(發電)의 결정적 단점은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만큼 전기 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람이 세게 불 때는 풍력을 통한 전기 생산이 많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발전량이 줄어든다. 일정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능이 발전소의 기본적 역할이라면 풍력, 태양광 발전은 자격 미달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해 주는 장치가 전기에너지 저장 장치다. 기준 이상의 전기가 바람이나 햇빛으로 생산되면 여분의 전기는 저장해 놓았다가, 바람이나 햇빛이 약해지면 저장해 놓은 전기를 풀어서 사용자에게 동일한 양의 전기를 꾸준히 공급한다. 일종의 전기 은행에 전기를 저축했다가 전기가 필요하면 인출하는 셈이다.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원이 전기를 저장하는 코일(오른쪽의 둥근 형태 물체)에 전기가 정상적으로 저장되는지 확인하고 있다. 코일 옆의 직육면체 형태의 장치는 코일에 저장된 전기를 필요할 때 외부로 공급해 주는 전력변환장치다./한국전기연구원 제공

한국전기연구원 초전도연구센터 성기철 박사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 저장장치를 개발했다. 성 박사팀이 개발한 전기 저장장치는 초전도 방식이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흐르면서 저항이 발생하지 않아 에너지 손실이 없는 물질이다.

태양광, 풍력 발전소가 생산한 여분의 전기를 초전도체 전기 저장장치에 보내면 저장장치는 전기를 나선형의 코일에 흘린다. 곡선으로 흐르는 전기는 부산물로 자기장을 만든다. 코일을 나선형으로 만든 이유다. 나선형의 코일 주위로 형성된 자기장은 자석처럼 철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즉 초전도 전기 저장장치는 전기 에너지를 자기 에너지로 변환시켜서 저장한다. 충분한 양의 전기가 자기장으로 바뀌었으면 전기를 더는 흘려 주지 않는다. 전기가 필요할 때는 코일에 연결된 전력 변환 장치를 통해 자기장을 필요한 전기로 바꿔서 공급한다.

일반 구리 도선을 활용해도 전기 에너지를 자기 에너지로 전환해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구리 도선에 전기가 흐르면 저항이 발생한다. 저항은 열을 만들어 공기 중으로 방출한다. 전기 에너지가 열로 바뀌어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이 없기에 이런 우려가 없다.

연구진이 개발한 초전도체 전기 저장장치는 1㎿(메가와트·1㎿는 100만W) 규모로 1000개만 있으면 고리 원자력 발전소와 비슷한 용량이다. 규모 면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초전도 전기 저장장치다.

고가의 반도체 생산장비 손상 막아

전기 저장장치가 필요한 대표적인 곳은 순간적이라도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안 되는 반도체 공장이다. 수백억, 수천억원짜리 고가의 반도체 생산 장비에 공급되는 전기가 단 0.1초라도 끊어지거나 강도가 약해진다면 장비에 손상이 간다. 전기 저장장치가 발전소에서 넘어오는 전기가 약해진다 싶으면 즉각적으로 이를 보충해야 한다. 현재 국내 반도체 공장에서는 불안정한 전력 공급으로 연간 수십 건의 사고가 발생한다.

이런 점을 대비하기 위한 장치로 배터리가 있다. 배터리를 반도체 공장에 적합한 규모로 키우려면 크기가 주택 정도로 커진다. 무엇보다 충전하는 데 수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초전도 전기 저장장치는 이런 면에서도 적합하다. 충전하는 데 불과 수초면 충분하면서 어른 몸집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되는 크기다.

성기철 박사는 "국내 반도체 공장에 초전도체 전기 저장장치를 설치하는 것을 해당 회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해당 연구결과를 21일 중국 허베이에서 열리는 국제 자기기술학회에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