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FOCUS 순수 국내 연구진이 지난 20년간 과학계와 산업계에 이론으로만 제시돼 왔던 전자의 스핀을 이용한 ‘스핀트랜지스터 소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하,KIST) 나노과학연구본부 스핀트로닉스연구단 장준연·구현철 박사팀이 개발한 스핀트랜지스터 소자 기술은 반도체에 전자의 스핀을 주입해 스핀의 방향에 따라 전기 저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이 스핀트랜지스터가 상용화되면 기존 반도체의 한계를 극복한 초고속·초저전력의 전자소자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기능 전환형 논리소자’와 같은 새로운 전자소자를 만듦으로써 컴퓨터를 부팅 과정 없이 바로 실행하고, 메모리와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를 한 칩에 모두 담는 등 정보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고 연구진은 전한다.
아울러 이번 스핀트랜지스터 기술 개발로 우리나라는 규소 기반 반도체에 이어 차세대 반도체 산업에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신화를 이어갈 수 있는 유리한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이 연구 내용은 과학저널 중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언스(Science)> 잡지 2009년 9월 18일자에 소개됐다.
기존 반도체의 한계 넘는 초고속·초저전력 전자소자
스핀트랜지스터는 실리콘 기반 반도체의 뒤를 잇는 차세대 반도체의 핵심으로 꼽히는 기술로, KIST는 2002년부터 10년 장기연구사업인 ‘비전 21 사업’의 지원으로 ‘스핀트로닉스연구단’이라는 전담연구단을 구성해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 사업은 21세기 기준에 맞는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그 동안 주를 이루던 선진국 추격형 연구에서 과감히 벗어나 고위험·고수익의 신기술 창출형 연구로 전환하기 위해 추진된 일종의 시범사업이다.
KIST는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는 새로운 개념의 스핀전자소자 기술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다학제간 인력으로 연구조직을 구성하고, 목적지향적인 ‘스핀트랜지스터 전담연구팀’을 탄력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스핀트랜지스터 구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7년 동안 개발한 스핀트랜지스터 소자 기술은 반도체에 전자의 스핀을 주입해 스핀의 방향에 따라 전기저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은 그동안 반도체가 전자의 전하(-)만을 이용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전하와 동시에 스핀을 새롭게 이용해 전자소자를 구동하는 신기술이다.
특히 전극 재료인 강자성 금속도체로부터 반도체로 전자의 스핀을 높은 효율로 주입하는 것과, 반도체에 주입된 스핀의 방향을 게이트 전압으로 제 어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연구진은 금속과 반도체간의 큰 전도도 차이로 자성금속에서 반도체로 스핀 주입이 불가능하다는 학계의 정설을 뒤집고, 정밀한 반도체 박막성장기술(MBE)을 통해 자성금속과 반도체의 계면을 효과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차세대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갈 원천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즉, 기존 상보성 금속산화물 트랜지스터(CMOS)소자와 같이 소스(source)-게이트(gate)-드레인(drain) 구조로 되어 있으나, 아래 그림과 같이 스핀을 반도체에 공급하고 반도체를 통해 이동한 스핀을 감지할 수 있도록 소스와 드레인이 자성 금속으로 이뤄진 점과, 게이트로 제어하는 대상이 스핀이라는 것이 기존 트랜지스터와 다른 점이다.
스핀의 방향 제어해 저항 변화시켜
1990년 다타(Datta)와 다스(Das)가 이론적으로 제안한 스핀트랜지스터(Spin Field Effect Transistor)는 전자의 스핀을 이용해 저항을 변화시키는 신개념 트랜지스터 소자로, 비휘발성, 저전력, 초고속 소자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아 최근 20여 년간 많은 연구가 진행돼 왔다.
연구진 설명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스핀트랜지스터는 기존 소자와 구조적으로 거의 동일하지만, 소스(source)와 드레인(drain) 부분이 전자의 스핀을 정렬하고 감지할 수 있도록 강자성 금속(ferromagnetic metal)으로 이뤄진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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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핀 FET의 구조 및 동작 원리 |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강자성체 소스의 자화(磁化) 방향(그림의 화살표 부분)으로 정렬된 스핀전자를 반도체에 주입시킨 다음, 소스와 드레인 사이에 위치한 게이트 전극에 전기장을 인가해 반도체 채널을 통해 이동하는 스핀전자의 방향(반도체 내부 전자의 화살표)을 조절한다.
드레인 자성체의 자화 방향은 소스와 동일한 방향으로 정렬돼 있으며 반도체 내부를 이동해 드레인에 도착하는 스핀전자의 방향이 드레인의 자화 방향과 평행(parallel)하거나 반평행(antiparallel)하면 각각 저항이 낮거나 높게 나타난다. 결국 반도체로 주입된 스핀의 방향을 게이트 전기장으로 제어하여 저항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소자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두 가지의 핵심기술이 있다고 전한다. 첫째, 강자성체 소스로부터 반도체로의 전기적 스핀 주입. 둘째, 반도체로 주입된 스핀을 게이트 전기장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거대자기저항(GMR)의 발견과 금(Au)으로의 성공적인 스핀 주입은 스핀트랜지스터의 이론적인 기초가 됐으나, 반도체로의 스핀 주입은 강자성 금속과 반도체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전도도 차이(conductance mismatch)로 인해 스핀 주입률이 매우 낮아(~1%) 전기적인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한편 광학적 방법으로 스핀 신호를 감지할 경우 20~40% 정도의 스핀 주입 신호가 측정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공정기술의 발달과 터널링 장벽을 통한 스핀 주입을 통해 규소(Si), 갈륨비소(GaAs) 반도체 등에서 전기적으로 스핀 주입 신호를 측정한 연구가 보고되고 있으나, 실제 스핀트랜지스터로의 응용이 가능한 반도체 채널에서는 아직 의미 있는 신호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스핀메모리 소자 개발 주력
게이트 전기장으로 스핀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전자의 이동도가 빠른 양자우물(quantum well) 구조의 고속이종반도체(high electron mobility transistor,HEMT) 기판이 필요하다. 이런 반도체 특성을 통해 연구진은 외부에서 인가한 게이트 전기장이 유효한 자기장으로 변환되어 반도체 내부를 고속으로 이동하는 스핀전자의 스핀 방향을 조절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 일본의 연구그룹에서는 ‘인듐갈륨비소 반도체(InGaAs)’와 ‘인듐비소(InAs)’ 채널 등 3~5족 기반 고속반도체를 이용해 스핀을 전기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특성인 라쉬바 상수(rashba parameter)를 측정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따라서 스핀트랜지스터가 구동하기 위해서는 위 두 가지 기술적 난제들을 모두 극복해 동시에 효과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연구진은 향후 스핀 주입률의 상승을 통한 전기신호 마진의 확대, 외부 자기장이 필요 없는 스핀소자와 소자 작동온도를 상온으로 올리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스핀논리소자 및 스핀메모리 소자가 개발되면 전자의 스핀을 기반으로 하는 논리 및 메모리 소자의 집적이 가능하고, 이 소자는 저전력, 초고속 작동의 특성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스핀 고유의 전원이 없어도 정보가 저장되는 비휘발성(nonvolatile) 특성으로 부팅 대기 시간이 필요없는 컴퓨터 개발이 가능해질 거라고 연구진은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