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에 떠난 곳은 강화도입니다. 너무 뻔하다고요? 맞습니다. 전등사·조개구이·마니산까지, 너무나 익숙하죠. 한데 ‘예습’ 좀 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너무 가까이 있어 그렇다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이번만큼은 그곳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려 1박2일 코스를 알차게 꾸려봤습니다. ‘강화도의 재발견’입니다.
09:40~ 서울 출발
김포대로 지나 강화대교 건너
15일 오전 9시40분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사옥을 출발한다. 이번엔 ‘형님’(신문사 취재차량 운전자를 뜻하는 업계 용어)대신 박종근 기자가 핸들을 잡는다. 모두 한마디씩 던진다. “선배는 아줌마 캐릭터니까, 형님보단 ‘누님’이 맞겠다. 누니임~.” 30여 분간 쌩쌩 달리던 차가 갑자기 거북이걸음을 한다. 목적지를 20㎞쯤 앞둔 김포대로에서다. 아침을 거른 이들이 투덜댄다. “금세 간다더니…아까 먹을 것을 샀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창 밖 음식점 간판을 읽어 내린다. “꽃게탕·바지락칼국수·조개구이…. 다 맛있겠다.” 듣고 있던 이은주 기자가 심드렁한 한마디. “외국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음식점이 어딘지 알아? 할머니뼈(쉬고)해장국.” 모두 말이 없다 빵 터진다. 웃는 사이 강화대교를 시원하게 내지른다.
11:00 ~12:10 젓국갈비로 브런치
고려 때부터 내려온 전통음식

12:30 ~3:30 강화 나들길 1코스 맛보기
우리를 웃기고 울린 꽃길
평소보다 배를 든든히 채운 이유가 있다. 오후 일정은 ‘걷기’다. 제주도 올레처럼 강화도에도 ‘나들길’이 있다. 8개 코스 중 우리가 택한 곳은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 본래는 강화버스터미널부터 갑곶돈대까지 5시간30분쯤 걸리는 17.2㎞의 구간이다. 하지만 기자들의 저질 체력을 간파한 듯 한혜진 문화관광해설사가 단축코스를 제안한다. 용흥궁을 출발해 북문을 돌아 고려 궁지로 되돌아오는 길이다. 뭐, 그쯤이야.
용흥궁은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이다. 해설사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철종은 입궁 전까지 평범하게 농사짓는 강화도령이었어요. 당시 봉이라는 처녀랑 사귀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임금에 오르면서 헤어지게 돼요.” 거기까지 들었는데 ‘연애 전문’ 이소아 기자가 가만있을 리 없다. “결국 버렸죠? 남자들은 꼭 출세하면 그런다니까.” 헉, 맞다. 나중에 봉이는 슬퍼하며 비구니가 됐다는 설과 자살했다는 설이 있단다.
용흥궁을 지나면 성공회(영국 헨리 8세 때 가톨릭에서 독립한 국교) 강화성당이다. 특이하다. 겉으로 볼 땐 소박한 한옥인데 내부는 서양식이다. 성당 앞마당엔 범종까지 있다. 종 표면에 십자가를, 옆쪽으로는 요한복음 1절 1장도 새겼다. 경복궁을 지은 도편수가 1900년에 직접 세운 성당은 동서양의 문화를 이처럼 곳곳에 버무려 놨다.
성당을 둘러보고 10분쯤 오르막길을 오르면 고려 궁지다. 입구로 들어가자 시야가 확 트인다. 7533㎡(약 2279평)나 되는 궁궐터다. 고려 왕조가 1232년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뒤 39년이나 있었던 곳. 몽골군이 철수하며 건물을 전소하라 요구해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시대에 다시 세운 것들이다.
천천히 동헌·외규장각·강화동종 등을 둘러보는데 기자들의 시선은 죄다 풀밭으로 향해 있다. 나물을 캤던 지난 해남 여행의 학습 효과다. “풀이 나물로 보인다” “뭔가 캐야 될 것 같다”고 한마디씩 한다. 동헌 뒤뜰에 있는 꽃·풀도 어찌 그냥 지나칠까. 마침 해설사도 이 분야엔 전문가 수준이다. 비비추·상사화·개망초·옥잠화까지 일일이 알려준다. 그 와중에 이도은 기자는 해설사에게 딴죽을 건다. “옥잠화는 물에 피는 거 아닌가요?” “그건 부레옥잠이죠.” 무식을 드러내는 데 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제비꽃이랑 오랑캐꽃이 같다는 건 아시죠? 개망초의 다른 이름이 담배나물이라는 것도요.” 엉? 모두 금시초문이다. 대치동 학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자연학습이 바로 이거다.
한 바퀴를 휙 돌아 이동하려는데 웬걸, 이번엔 들꽃이 한가득 피어있다. 각자 흥분해서 목청 데시벨이 올라간다. 박종근 기자가 “철쭉 속에 진달래가 폈다”고 다섯 번이나 외쳤지만 아무도 대꾸조차 없다. 이은주·백성호 기자는 아예 드러눕는다. 키 작은 들꽃들과 시선을 맞추는 방식이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한 어르신이 꽃 이름을 알려준다. 노란 꽃은 꽃다지, 흰 꽃은 냉이꽃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 “냉이꽃 피는 이맘때가 옛날 농촌에선 참 배고픈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당시 어느 아비가 시집 간 딸을 보러 갔답니다. 대접할 게 아무것도 없는 딸이 아비를 원망하면서 그랬대요. ‘아버지, 냉이꽃 핀 거 안 보셨소’라고요.” 꽃놀이에 들떴던 마음이 순간 숙연. 꽃 하나가 사람을 웃기고 울린다.
고려 궁지를 나와서는 본격적으로 걷는다. 북문길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자꾸 미끄러지는 이도은 기자는 심리적 마찰력이 제로라며 아우성, 체력이 바닥난 이소아 기자는 차라리 기사 10장을 쓰겠다며 호들갑이다. 높은 곳에 올라 숨을 고르니 저 멀리 북한이 보인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갈 수 없는 땅이다. 개성의 송악산도 시야로 들어온다. 놀랍다고만, 신기하다고만 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흐른다.
3:50 ~4:40 순무김치 담그기
김치 2kg 들고 나오는 뿌듯함
강화도 여행에서도 체험은 백미다. 이번엔 순무김치 담그기(1인당 1만5000원)다. 순무는 새우젓만큼이나 강화가 자랑하는 먹거리다. 체험을 진행한 ‘강화섬김치’ 김경호 사장은 강화도 순무가 일반 무보다 소화불량에도 좋고 피부 미용에도 탁월하다며 ‘만병통치약’ 수준의 자랑을 한다. 서울 강남에서는 ‘고급 룸살롱 안주’라는 귀띔도 빼놓지 않았다. 순무는 보통 무와 모양부터 다르다. 양파를 2~4배쯤 키운 듯한 동그란 모양에 보랏빛을 띠고 있다. 김치를 담그려면 깍두기보다 큼지막하고 납작하게 썰라는 ‘시범 조교’의 설명이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모두 ‘프리 스타일’. 20분쯤 뒤부터 슬슬 힘들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는데 연신 무를 집어 먹은 백성호 기자만 딴소리다. “아유, 난 배불러서 못하겠네.” 어쨌든 양념을 함께 버무리고 완성해 먹어주는 기쁨까지, 논스톱이다. 각자 2㎏씩 김치를 들고 떠나는 마음이 뿌듯하다.
5:10 ~ 숨 막히는 석모도 일몰
호젓한 바닷가 드라이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