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시인
시인
최근 정자해수욕장에 개관한 ‘인문학서재 몽돌’의 기획행사로 열린 ‘시시(詩詩)한 만남, 자연과 톡(Talk)하다’에 초대됐으니 마다할 리 없었다. ‘바다 시인’ 권주열씨와 ‘지리산 시인’의 만남, 그리고 두 시인의 시를 작곡한 시노래패 ‘울림’의 노래와 시낭송가 구경영씨의 낭송으로 동해 밤바다와 지리산이 기꺼이 어깨동무를 했다. 시와 노래와 낭송과 방담이 잘 어우러진 가슴 뭉클한 콘서트였다.
이처럼 처음부터 시는 노래였다. 그러나 말 그대로 과거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대중에게 고립되는 듯한 시를 다시금 노래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눈물겹다. 아직도 많은 이가 전국 곳곳에서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화적 저력과 품격의 잣대가 아닐 수 없다.
울산의 싱어송라이터 박제광씨와 보컬 박경하씨가 이끄는 시노래패 ‘울림’과 안동에서 활동하는 위대권·강미영씨 부부의 ‘징검다리’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수많은 시에 곡을 붙인 전라도의 한보리씨, 시노래 모임 ‘나팔꽃’을 결성해 정호승·김용택·도종환·안도현 등 시인들과 함께한 가수 김현성·안치환·백창우·홍순관 등과 광주의 김원중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대의 화두는 다양성과 통섭 혹은 융합이 아닌가. 각자 따로 놀던 장르들의 예술적 소통은 최근의 인문학 열풍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열풍도 지적 허영심을 채우거나 교양적 욕구에만 머문다면 그 자체가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소통의 지혜가 아닌가.
몇 년 전에 생긴 지리산학교가 호응을 받은 것도 이런 우려를 넘어서자는 뜻일 것이다. 많이 삐걱거렸지만 어느새 지리산학교는 네 개가 되었다. 하동·구례·남원의 각 지역학교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지리산학교 등으로 자가발전하듯이 분화해 ‘따로 또 같이’ 여전히 실험 중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1박2일의 지리산문학캠프를 담당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농부·목수·주부 등 참으로 다양하다. 시인들만 시를 써야 하는가. 아니다. 시를 쓰면 누구나 이미 시인인 것이다. 글짓기 이전에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어느 순간 중년의 한 여인이 자기만의 절절한 생을 노래하고 그 글을 낭독하다 결국 울음보를 터뜨리는 날이 온다. 그 이후부터는 이미 등단이니 뭐니 필요도 없이 자기 생의 정면에 서는 시인이요 수필가인 것이다.
만약 농부가 서투르지만 시와 수필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얼굴 없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가족사와 철학이 깃든 농산물을 ‘창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도시 소비자들의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문화적 소통과 잃어버린 외갓집이 된다는 뜻이다. 하동군 횡천면에 가면 실제로 그런 농부가 있다.
누구나 즐겨 부르는 노래 ‘18번’이 있듯이 자신이 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를 줄 안다면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고알피엠여사’로 불리는 나의 아내 신희지씨의 ‘나를 사랑해’나 옻칠공예가 성광명씨의 ‘다 망해서 왔네’ 등의 노래는 자신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한보리씨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곡이다. 유행가보다 더 진정성이 돋보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학교마다 교가가 있듯이 저마다 가정마다 노래 한 곡씩 만들어 부를 수 있다면, 이 또한 인문학 열풍이 마침내 가 닿아야 할 바다가 아닌가. 그곳이 멀지 않다.
이원규 시인
몇 년 전에 생긴 지리산학교가 호응을 받은 것도 이런 우려를 넘어서자는 뜻일 것이다. 많이 삐걱거렸지만 어느새 지리산학교는 네 개가 되었다. 하동·구례·남원의 각 지역학교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지리산학교 등으로 자가발전하듯이 분화해 ‘따로 또 같이’ 여전히 실험 중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1박2일의 지리산문학캠프를 담당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농부·목수·주부 등 참으로 다양하다. 시인들만 시를 써야 하는가. 아니다. 시를 쓰면 누구나 이미 시인인 것이다. 글짓기 이전에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어느 순간 중년의 한 여인이 자기만의 절절한 생을 노래하고 그 글을 낭독하다 결국 울음보를 터뜨리는 날이 온다. 그 이후부터는 이미 등단이니 뭐니 필요도 없이 자기 생의 정면에 서는 시인이요 수필가인 것이다.
만약 농부가 서투르지만 시와 수필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얼굴 없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가족사와 철학이 깃든 농산물을 ‘창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도시 소비자들의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문화적 소통과 잃어버린 외갓집이 된다는 뜻이다. 하동군 횡천면에 가면 실제로 그런 농부가 있다.
누구나 즐겨 부르는 노래 ‘18번’이 있듯이 자신이 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를 줄 안다면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고알피엠여사’로 불리는 나의 아내 신희지씨의 ‘나를 사랑해’나 옻칠공예가 성광명씨의 ‘다 망해서 왔네’ 등의 노래는 자신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한보리씨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곡이다. 유행가보다 더 진정성이 돋보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학교마다 교가가 있듯이 저마다 가정마다 노래 한 곡씩 만들어 부를 수 있다면, 이 또한 인문학 열풍이 마침내 가 닿아야 할 바다가 아닌가. 그곳이 멀지 않다.
이원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