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년간 다니던 국가출연연구소를 재작년에 정년퇴직한 P씨는 요즘도 국내외 과학기술정보 분석활동을 하느라 바쁘다. 그가 분석한 미래동향 기술 분야 등의 보고서는 매일 이메일을 통해 학계나 업계에 유용한 과학정보로 제공된다. 또 그가 올린 보고서 내용 중 일부는 학술지 논문에 인용되거나 언론매체 등을 통해 가끔씩 보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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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시트는 은퇴 과학기술인들이 분석한 국내외 과학정보를 학계나 업계 등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일선에서 은퇴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P씨가 이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운영하는 ‘리시트(ReSEAT)’ 사업 덕분이다. 11년 전부터 시작된 이 고경력 과학기술인 활용지원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진흥기금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최근 퇴직하는 과학기술인들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들의 노하우와 지식을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5월에 발표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2010~2020년에 은퇴하는 과학기술인은 약 11만3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1945~1954년생은 1만6천명, 1955~1964년생은 9만7천명으로서 기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과학 및 정보통신, 공학을 전공한 퇴직 과학인들이 대거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이에 따라 풍부한 경험과 기술력을 갖춘 은퇴 과학기술인들을 활용해 연구개발 업무 등을 지원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지만, 갈수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여겨진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제2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에 따라 2015년까지 원로 과학자를 활용할 계획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앞에서 예로 든 KISTI의 리시트 사업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은퇴 과학자들은 현재 280명으로서, 올해 25억원의 사업 예산이 투입된다.
중소기업의 R&D 지원하는 테크노닥터
200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테크노닥터’ 제도 역시 과학기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출연연 및 대기업에서 퇴직한 고경력 과학기술인을 중소기업과 연결시켜 기업의 R&D를 지원하는 이 사업은 기술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해 이 사업을 통해 기술개발이란 달콤한 열매를 수확한 기업이 106개에 이를 정도. 특히 지난해부터 대기업 출신 연구원들을 사업에 합류시켜 현장으로부터 좋은 평을 듣고 있다.
올해 말부터 활동할 테크노닥터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이공계인력중개센터에서 10월 26일까지 모집 중인데, 신청자격은 공공연구기관을 퇴직한 선임급 이상 연구원 및 대학 부교수 이상, 대기업 부설연구소를 퇴직한 책임급 이상 연구원으로 기술·연구분야 경력이 10년 이상인 자다.
은퇴한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개발도상국의 신흥 경제 발전을 위해 체계적으로 전수하는 국제 지식기부 프로그램도 있다. 재단법인 한국기술경영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앙코르 코리아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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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술경영연구원에서는 은퇴 과학자들과 국내 거주 해외 유학생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멘토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에쓰오일 홍보팀 | 이 프로젝트는 은퇴한 과학자들을 전문 분야별로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다음 지원 국가별로 필요한 맞춤식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은퇴 과학자들을 해외에 파견해 봉사활동을 하는 등의 활동을 지원한다. 또 중국,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국내 거주 해외 유학생들과 은퇴 과학자를 멘티-멘토로 연결시켜 학업 및 취업, 인턴십 등에 대해 도움을 주기도 한다.
S-OIL이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 차원에서 설립한 공익재단 ‘에쓰-오일과학문화재단’은 지난 24일 ‘앙코르 코리아 프로젝트’를 위해 3억원을 후원한다고 밝혔다.
은퇴 과학인들이 찾아오는 도시 만들기
한편, 은퇴 과학기술인들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을 세우는 기관들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모여 있는 대전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현재 대전시에는 은퇴한 고경력 과학기술인들이 약 1천500여 명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전시는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고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 중이다. 먼저 기존에 운영해 오던 ‘원로과학기술자라운지’를 ‘고경력 과학기술인 커뮤니티센터’로 명칭을 변경해 운영을 확대하고, 고경력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구축 및 학교와의 자매결연 등을 통해 과학기술교육기부 멘토사업 전개, 고경력 과학기술인 정책토론회 개최, 중소․벤처기업들을 위한 기술닥터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지난 4일 대덕특구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은퇴 과학자들을 지원하고 활용할 목적으로 한 ‘과학교육 기부·멘토 사업’을 대전시교육청과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까지 35개 초등학교, 20개 중학교, 15개 고교 등 70개 학교와 은퇴 과학자가 일대일로 결연해 과학자가 학교에서 실험 및 실습 등의 교육에 참여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지난 4월에는 대덕특구 내에 ‘대덕 사이언스 나눔터’를 개관했는데, 이곳에서는 고경력 은퇴 과학자를 채용해 기술 및 사업화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특구 내 연구자와 기업인 간의 네트워킹을 지원해 기술과 사업의 연결을 돕는 ‘기술탐색데스크’ 서비스 등이 제공된다.
내년 이후에는 과학기술정보 교류와 커뮤니티 활성화, 다양한 후생복지공간 조성을 위한 ‘사이언스 커뮤니티홀’을 건립하고, 과학기술인 사회활동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재단 설립 및 거주지 조성 등 3개 과제의 사업을 중장기 실천과제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과학기술인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 도모를 위해 설립된 과학기술인공제회에서는 은퇴 과학자들의 전문역량을 기반으로 교육 및 연구사업을 수행하는 ‘석좌원’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석좌원은 과학강연 및 저술, 기술자문 등 세부적인 분야로 나눠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던 과학기술인들이 은퇴 이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