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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늙어가는 아내에게

FERRIMAN 2013. 10. 29. 16:52

입력 2013.10.28 00:41 / 수정 2013.10.28 00:41
 

[시가 있는 아침] 늙어가는 아내에게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1952~ )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중략)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한 영화감독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더라고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보다 더 맞는 말들이 많아요. 나는 지금 너의 이런 부분이 좋아, 그런데 다음날이 되니까 그게 아니라 다른 점이 좋아….” 사랑이 변하는 거냐며 질질 짜대는 사람들에게 손수건 건네주는 일이야 마른 김에 밥 싸먹는 일처럼 식은 죽 먹기죠. 식은 죽이라면 버릴라 치는 변덕은 사람이, 그 사람의 말이 부리는 거잖아요. 생선 발라먹다 말고 팝콘 통에 손 넣다 말고 우는 여자의 속눈썹에 입 맞추다 말고 사랑한다, 고백 좀 마세요. 네 손톱에 예쁜 달 떴네, 네 엄지손가락 망치처럼 단단한 것 좀 봐 못도 박겠어, 네 쫀쫀한 허벅지 보면 말이 형님 하겠는걸, 눈썰미를 수다로 발휘해 보세요. 결국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맞는 말을 찾아가는 여정 아닐까요. <김민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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