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상

근대 문화유산 정난각(貞蘭閣)

FERRIMAN 2014. 4. 26. 18:54

 

 

2014년 3월 7일

노모의 허리에 통증이 심하다 하시기에

부산을 다녀 왔습니다.

아픔을 대신할 수도 없으니

도움이 돼드리지도 못했지요.

내가 올라가고 안사람이 내려와야

식사라도 챙겨드릴 수 있겠다싶어

다음 날 올라왔습니다.

부산역으로 오든 중에 불현듯 생각나서

고관입구에서 내렸습니다.

산복도로 올라가는 긴 계단을 하나 하나

밟을 때 마다  

어린 시절 이 계단을 밟으며 숨차했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눈 앞에서 피어오르더군요.

그 옛날 옛집 앞을 지나서

대문 맞은 편 좁은 골목을 내려오면서 보니

오론쪽 일본인 철도청장 관사는 아파트 단지로 변한지 오래되었고,

반대편 외떨어져 있었던 정난각(貞蘭閣)은

난개발 주택지에 둘러싸여

예전의 고고한 자태를 잃었습니다.

어린시절 내 눈에는

그 건물이 동화에 나오는 궁전 같아서

예쁜 공주가 살고 있을 것이라 상상했지요.

실제로 그랬습니다.

해방 후 그 건물은

해방 전과 마찬가지로 요정(料亭)으로

쓰이고 있었지만

주인이 한국 사람이고

출입하는 고관대작들이 한국인으로 바꿨겠지요.

주변에 공사하는 흔적이 많아서

물어 보았더니

근대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시 예산으로 보수를 한다더군요.

그 건물의 역사를 알면

창피스러운 일이고

감추고 싶은 온갖 일들이 그 속에서 이루어졌겠지만

아름다운 건물이 부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지요.

어릴 적에 보았던

그 집 앞 길을 메운 수많은 검정색 세단차와

문 앞을 들락거리며

손님 마중 배웅하던 형형색색 한복입은 여인들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