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나노와이어와 탄소나노튜브 복합소재
[인터뷰] 이진환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LCD와 PDP, OLED, 터치스크린부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ITO는 투명전극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높은 전도도와 투명도로 인해 ITO 물질은 학계와 산업계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매장량의 한계와 불안정한 가격, 내재적인 세라믹 특성으로 유연소자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금속 및 산화 금속 나노와이어, 혹은 탄소 동소체를 이용한 유연전극이 개발되고 있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은 나노와이어 유연전극은 전도성과 투명도 면에서는 기존 ITO와 유사하고 경제성도 우수하지만 유연전극으로 적용하기에는 내구성이 다소 떨어진다. 은 나노와이어 박막층을 유연소자로 활용하려면 산화 및 물리적 스트레스로부터 견딜 수 있도록 강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탄소 동소체, 특히 탄소나노튜브의 경우 ITO같은 희소물질이 아니기에 경제성 측면에서 보다 우수하고, 전극 소재 측면에서 기계적 강도가 우수해 유연소자 제작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탄소나노튜브 박막층을 이용한 전극의 경우 ITO와 금속 및 산화금속 나노와이어를 적용한 박막층에 비해 투명전극 소재로서 요구되는 투과율과 면저항 값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투명성과 신축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국내 연구진이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은 나노와이어와 탄소나노튜브의 복합소재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고승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의 주도로 이진환 카이스트 박사과정 연구원과 이필립 연구원, 함주연 연구원 등이 신축성과 투명성을 갖는 소재를 개발한 것이다. 해당 연구 결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첨단기능성소재 분야의 국제학술지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스(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연구팀은 은 나노와이어의 투명한 성질과 탄소나노튜브의 유연성에 주목했다. 각각의 소재가 일장일단이 있는 만큼, 각각의 장점만을 뽑아 합성할 경우 성능 면에서 우수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투명전극을 만드는 데는 여전히 한계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신축성과 유연성을 갖는 전극 소재를 개발하자는 게 기본적인 목표였죠. 사실 단순히 나노와이어만 사용한다해도 신축성 있는 소재는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탄소나노튜브를 섞을 경우 기계적 강도가 우수한 물질을 개발할 수 있죠. 복합소재를 만드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어요. 유연성 구현을 연구의 최우선 상에 놓은 후 그 일환으로 소재를 복합했습니다. 은 나노와이어는 기계적 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탄소나노튜브를 섞으면 각각의 단점이 상호 보완될 수 있겠다 싶었죠.”
사실 연구팀이 복합소재를 개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핀과 전도성 고분자 등도 은 나노와이어와 섞음으로써 다양한 시도를 진행한 바 있다. 전도성 고분자의 경우 이미 논문이 나왔으며, 그래핀의 경우 타 그룹에서 많이 진행하는 분야인 만큼 이진환 연구원의 팀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를 기본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세 분야 모두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며, 이번 연구는 신축성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례라고 보면 된다.
“저희 팀의 이번 연구는 은 나노와이어와 탄소나노튜브의 계층적 복합구조가 투명전극과 매우 유연한 도체로서 좋은 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은 나노와이어 박막층은 높은 전자밀도 때문에 전도성이 뛰어나요. 은 나노와이어 박막층 위에 놓인 탄소나노튜브 박막층은 동맥과 정맥을 보조하는 수많은 모세혈관처럼 은 나노와이어 박막층에 다양한 전자경로를 제공하죠. 뿐만 아니라 아래의 은 나노와이어 박막층의 비접촉 부분을 연결합니다. 이를 통해 탄소나노튜브로 보조된 은 나노와이어 전극은 탄소나노튜브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우수한 투명도와 전도도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 이렇게 만들어진 전극소재는 ITO와 상응하는 수준의 투명도와 전도성을 보였다. 은 나노와이어만으로 구성된 박막층 보다 유연성이 더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탄소나노튜브가 은 나노와이어 접합 부분을 덮어 마치 종이 위에 붙인 테이프처럼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의해 은 나노와이어 간 이음부분이 분리되는 것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만 회의 굽힘이나 완전한 접힘, 원래 길이의 4배 이상으로 잡아당겨도 전도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40˚의 꼬임에도 좋은 전도도를 보여줬다. 반복적인 굽힘이나 접힘, 늘임, 꼬임 등 다양한 유연성 테스트에서 탄소나노튜브 박막층으로 덮어진 은 나노와이어 박막층은 은 나노와이어 만으로 구성된 전극보다 더 나은 신축성과 투명성을 가질 수 있었다.
“왜 소재를 섞냐는 편견, 가장 어려웠죠”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은 나오와이어나 탄소나노튜브 등 단일소재로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연구자들은 늘 ‘더 좋은’ 물질을 만드는 데 욕심이 있죠. 각각의 단일 소자로서도 충분히 우수하지만 여기서 성능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싶었죠. 그러다가 섞어보기로 한 거예요. 이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단계가 어려웠어요. 왜 굳이 물질을 섞냐는 질문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기존에는 단일 소자였어도 레이저 처리를 한다거나 기판 자체를 변형시키는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쳐 신축성이 가능해진 것인 반면 저희 연구는 이러한 과정을 배제하더라도 신축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죠.”
이진환 연구원은 해당 연구 분야가 산업계와 굉장히 밀집해 있다고 이야기 했다.
“연구자들이 조금만 더 노력하거나 집중한다면 시제품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더 나아가 실제로 적용 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10년, 20년을 바라보고 진행하는 장기적인 안목의 연구도 있겠지만 저희 팀이 연구하는 분야는 산업현장의 보폭을 맞출 수 있는 분야입니다. 실 산업에 적용이 가능한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대한 쉽고 저렴하게, 더불어 간단하게 결과를 만들고 싶어요. 여전히 사업계와 간극이 있긴 하지만 그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발한 투명전극으로 터치스크린을 구현해 다수의 전자장치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부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연전극 제작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피부와 닮은 유연센서를 구현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컴퓨터 및 전자장치 공간인 유비쿼터스 환경 구축에 큰 공헌을 할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미래 웨어러블 전자장치의 부품의 가능성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높은 신축성과 투명도 전자제품에 대한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다 계층적 나노복합소재 제작 기술은 은 나노와이어와 탄소 나노튜브에 국한되지 않아요. 진공여과 과정에서 자유자재로 패턴이 가능해 다양한 나노소재, 다양한 형태의 박막층을 다 계층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해당 기술의 실용화를 위해 재료와 패턴의 공정시간을 단축시키고 대면적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8.0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