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터미네이터·스타워즈 … SF영화는 철학교실이다
마크 롤랜즈 지음
신상규·석기용 옮김
책세상, 452쪽, 1만8000원
삶의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 철학이라면, 일상의 모든 것은 철학의 소재가 된다. 늑대와 11년간 동거한 생활을 담은 『철학자와 늑대』로 괴짜철학자 별명을 얻었던 저자가 이번엔 SF영화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내친 김에 ‘SF철학’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하필 왜 SF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훌륭한 SF물의 줄거리 속에서 우리는 괴물을 응시한다. 그리고 이때 우리를 빤히 마주보고 있는 그 괴물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알게 된다.”(9쪽)
‘터미네이터’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까지, 저자가 고른 열두 편의 영화는 누구나 제목은 들었음직한 대중적인 작품이다. 흥미로운 오락거리인 동시에 인류 철학사를 수놓은 화두를 응집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저자가 첫 번째로 내세운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자.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호기심에 의해 탄생한 괴물의 이야기다.
영화 속 괴물은 사람을 위협하는 존재지만 괴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결단코 갖고 싶지 않았을 외모와 설명할 길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으로 내던져졌을 뿐이다. 저자는 묻는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 역시 각자의 입장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지만, 외부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상에 나와 어쩔 수 없이 적응해가야 하는 피조물일 뿐이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이런 부조리를 극대화한 존재다.
‘매트릭스’는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의 핵심 주장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문제를 노골적으로 다룬다. ‘스타워즈’의 악당 다스 베이더에는 니체가 말한 초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터미네이터’에서 유물론을, ‘반지의 제왕’에서 도덕 상대주의를,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고민한 죽음의 문제를 끌어낸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자들의 까다로운 사고실험이 명쾌하게 정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논증을 그대로 따르려 하지 말고, 위태위태한 부분을 찾아내 이를 멋지게 박살내 보라고 도발한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모피어스의 대사를 빌자면, 삶도 철학도 “단지 길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길을 따라 걸어갈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영희 기자
'과학기술 교육과 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일보] 글로벌 인재의 한국 선호 (0) | 2014.10.12 |
---|---|
[중앙일보] 노벨상 일본과 한국의 격차 (0) | 2014.10.12 |
[중앙일보] 디지털 혁명 (0) | 2014.10.12 |
[중앙일보] 2014년도 노벨 화학상 (0) | 2014.10.12 |
[다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0) | 2014.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