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의 길, 화가의 길, 사랑의 길, 해탈의 길 … 성북동 길
[서울, 오늘의 기억 내일의 유산]
④ 한국 예술 100년 켜켜이 쌓인 '인문학 박물관' 성북동 루트
순애보·무소유 … 사연 많은 길상사 시인 백석은 1930년대 말 기생 김영한에게 반해
‘자야(子夜)’라고 부르며 같이 살았다. 동거를 반대한 집안 어른을 피해 택한 사랑의 도피처는 러시아였다. 백석은 러시아에서 자야를 기다리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썼다.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야는 러시아에 가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백석과
자야가 만날 수 있는 길은 끊기고 말았다. 자야는 성북동에 요정 ‘대원각 ’을 세워 큰 부를 일궜지만 백석의 생일(7월 1일)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자야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화돼 95년 1000억원 상당의 대원각 부지 2만3000여㎡ 를 법정스님에게 시주했다.
그것이 지금의 길상사다. 99년 숨진 자야는 생전에 “그 돈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는 글을 남겼다. 펜화 오른쪽 불상은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가 만든 것으로 성모상을 닮은 관세음보살상이다. 종교 화합을 염원하는 작품이다. [안충기
기자]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간송(澗松) 전형필은 자신이 보관해 왔던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을 세상에 공개했다. 해례본을 통해 한글의 독창적인 제작 원리와 철학 체계가 알려지면서 ‘고대 문자를 모방한 것’이라는 오랜 왜곡이 바로잡혔다. 김종택 한글학회장은 “해례본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글의 가치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10월 9일 한글날도 책의 서문에 적힌 출판일인 1446년 음력 9월 10일을 기준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간송이 해례본을 사들인 1940년은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42년엔 조선어학회 33인이 투옥됐으며 이 중 몇몇은 옥사했다.
시인 김광섭이 1969년 발표한 시 ‘저녁에’와 이듬해 화가 김환기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제목으로 그린 답화(答畵)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81년에는 듀엣 ‘유심초’가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예술혼을 자극했다. 60년대 교분을 다진 시인 이산(怡山) 김광섭과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는 대표적인 예다. 이산이 어스름 저녁 하늘을 그린 ‘저녁에’를 짓자 이에 수화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한 그림을 발표했다. 한국미술대상전 제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한국 추상미술의 놀라운 성취다.
문인들의 스토리도 넘친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길상사(吉祥寺·펜화)엔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러브스토리가 있다. 만해 한용운이 총독부 방향을 바라보기 싫어 지은 북향집 ‘심우장’ 툇마루에선 나라를 잃은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수연산방은 이태준의 외손녀가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석남 시인은 “학생들을 성북동에 데리고 오면 이렇게 가치 있는 볼거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며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공간과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더 좋은 공부”라고 했다. 성북동의 유산과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김명석 교수는 “제대로 발굴되지 않은 곳도 많고, 박태원·윤이상 집터엔 비석 하나 없다”고 아쉬워한다. 서울시는 ‘윤중식 가옥’과 ‘박경리 가옥’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아직 매입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둘러볼까=성북동은 언덕과 언덕으로 이어져 있다. 달동네인 북정마을에 있는 심우장이나 2만㎡ 대지의 길상사를 둘러보는 건 웬만한 체력으로도 쉽지 않다. 대중교통으로는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걸어가거나 6번 출구의 시내버스 1111번, 2112번, 길상사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본지가 제안한 A코스에 관심이 있다면 시내버스를, B코스를 보고 싶다면 길상사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성북동에는 유명한 한정식집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만 성북초등학교 건너편에 40년째 서 있는 ‘쌍다리 돼지불백’의 7000원짜리 불고기백반은 줄 서서 먹는 명물이다.
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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