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때 절해고도에 '유배'된 순교자 황사영 아들 묘비가 …
그 길 속 그 이야기 (52) 추자도 올레
봉글레산 구릉에서 바라본 추자항 전경. 안개 낀 추자항 건너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자락이 하추자도다. 추자도 올레가 그 희미한
산자락까지 이어져 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섬으로 가는 여행은 설렌다. 설레지 않는 여행이 어디 있을까마는, 섬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멀미가 인다. 섬으로 가는 길이 멀고 고될수록 가슴은 더 부풀어 오른다.
추자도에 들어갔었다. 제주올레 18-1코스 추자도 올레를 걷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쓰니 영 맛이 안 난다. 하여 다시 쓴다. 추자도는 3년 전부터 꿈꾸던 섬이었다.
섬에 들어가, 섬에서 살다 간 한 사람의 생을 추억하고 싶었다. 하나 추자도는 쉬이 열리지 않았다. 섬에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바다가 길을 막았다. 이번에는 용케도 태풍을 피했다. 꼬박 이틀을 걸었고, 마침내 그 사람의 무덤 앞에 섰다. 긴 한숨을 내쉬고 담배에 불을 붙여 향을 피웠다.
섬 속의 섬 또는 섬 밖의 섬
하추자도 갯바위에서 갯것을 캐는 섬 아낙.
아담한 예초리 포구.
제주도는 바다에서 화산이 폭발해 솟구친 섬이고, 추자도는 한반도 남쪽 끄트머리 땅이 바다에 가라앉으면서 생긴 섬이다. 하여 제주도의 검은 흙을 이루는 현무암은 추자도의 흙이 아니다. 추자도의 집도 키가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제주도처럼 돌담을 층층이 쌓아 올리진 않았다.
추자도에는 평지가 거의 없다. 크고 작은 산이 섬을 덮고 있다. 제주도에선 보기 힘든 소나무가 추자도에선 흔하다.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내는 추자도의 몽돌해안은 보길도 해안을 닮았고, 소나무 우거진 추자도의 산은 해남의 달마산이 떠오른다. 추자도는 제주도 바깥의 섬이다. 아니 한반도 맨 아래 땅이다.
땅이 뭍에서 왔으니 사람도 뭍에서 왔다. 추자도 주민은 전라도 출신이 대부분이다. 1970대만 해도 아이들을 목포로 유학을 보냈고, 추자도 음식이 맛있는 건 남도 손맛이 전해져서라고 한다. 제주도 특유의 방언도 추자도에선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전라도 억양이 말투에서 묻어난다. 섬에 머무는 이틀 사이 여러 주민과 말을 섞었는데 “전라도 출신이냐 제주도 출신이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추자도 출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기와 올레길
추자도 앞바다는 국내 최대의 참조기 어장이다.
추자도 특산품은 단연 참조기다. 국내에서 나는 참조기의 30%가 추자도산(産)이다. 추자도 동북 바다가 남해와 서해를 잇고 있어 여름에는 갈치가 나고 겨울에는 삼치가 올라오지만, 추자도에서는 참조기가 아니면 잡어 취급을 한다. 초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추자도는 참조기로 들썩거린다.
하나 그것도 다 옛날 얘기다. 추자도에 조기 파시가 열리던 90년대만 해도 추자도 인구는 7000명이 넘었다. 지금도 3000여 명이 추자도를 주소로 두고 있다지만, 실제 섬에 거주하는 주민은 1000명 남짓에 불과하다. 추자도 조기 배가 추자항이 아니라 제주도 한림항에서 뜨고 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배도, 사람도 대처(大處)로 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추자도 최고봉 돈대산의 해발고도는 164m밖에 안 된다. 하나 돈대산은 멀고도 높다. 해발고도 제로(0)에서 길이 시작하거니와
올레길을 따라 꼬박 6시간은 걸어야 한다.
“2010년 추자도 올레를 열고 2년 동안 옛길을 이으며 길을 보완했습니다. 지금 하도 올레길의 절반 이상이 개장 이후에 수정한 길입니다. 섬 방문객이 추자도 올레가 열리고 연 4만 명에서 6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요즘엔 낚시꾼보다 올레꾼이 더 많이 들어옵니다.”
올레지기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읽혔다. 길은, 길을 걷는 사람은 물론이고 길을 낸 사람도 바꾼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어부의 무덤
`대역죄인`의 아들은 이 외딴 섬에서 평생을 어부로 살다
죽었다.
길은 혼자 걸었다. 길 사진에 사람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혼자서 가야 할 곳이 있었다. 하도 동쪽 끄트머리 언덕에 들어앉는 ‘황경한의 묘’였다. 추자도를 꿈꿨던 것도 실은 이 묘지 앞에 서고 싶어서였다.
황경한은 19세기 추자도 어부의 이름이다. 위업은커녕 선행도 딱히 전하는 게 없는, 남쪽 바다 외딴 섬의 무명씨 어부다. 하나 그의 무덤은 성지처럼 꾸며져 있다. 2011년 천주교 제주교구가 묘비를 세우고 묘역을 조성했다.
묘비에는 ‘순교자 황사영 신앙의 증인 정난주의 아들 황경한의 묘’라고 적혀 있다. 이 무덤의 주인이 황사영 백서 사건의 당사자 황사영(1775∼1801)의 아들이다. 황사영의 아들이 어쩌다 이 절해고도에 묻혔을까.
남편 황사영은 서울에서 처형됐고 아내 정난주는 두 살 아들 경한을 안고 제주로 유배를 갔다. 정난주는 배가 추자도를 지날 때 섬 동쪽 갯바위에 아기를 내려놓고 떠났다. 아들만큼은 죄인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정난주는 제주 대정에서 관노로 38년을 더 살고 죽었다. 아기는 예초리 어부 오씨가 거둬 제 자식처럼 키웠다. 경한이 성년이 되자 오씨는 꼭꼭 숨겨뒀던 내력을 들려줬다. 그래도 모자는 평생 재회하지 못했다. 뒤늦게라도 화를 입을까 염려해서였다.
하도에 경한의 6대 손이 살고 있다고 들어 수소문했지만, 후손을 만나지는 못했다. 추자도에선 지금도 오씨와 황씨의 혼인을 금한다는 얘기만 들었다. 묘역을 꾸민 천주교도 어부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묘비에 경한이 태어난 해(1800년)는 있었지만 죽은 해는 없었다.
무덤에서 나오는 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어부의 일생을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다 갔을 터였다.
추자도에 민박집과 모텔이 여러 곳 있는데, 올레꾼이라면 추자도에 하나뿐인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한다. 올레지기 김정일씨가 운영하며 방이 모두 7개 있다. 1만5000원. 064-742-1801. 추자도 게스트하우스는 올레꾼 사이에 밥이 맛있다고 소문났다. 김씨의 이종 사촌누이 고점숙(50)씨의 솜씨 덕분이었다. 고씨가 올레꾼의 성원에 힘입어 지난달 게스트하우스 아래에 식당을 차렸다. 귀빈식당. 굴비정식이 대표 메뉴로, 제주올레 패스포트를 보여주면 1000원을 깎아 7000원에 판다. 064-742-4900. 추자도 올레에 관한 문의는 김정일씨 010-4057-3650.
‘이달의 추천 길’ 8월의 주제는 섬 길이다. week& 이 다녀온 제주올레 18-1코스 등 섬에 난 트레일 10개가 선정됐다.<표 참조>
이달의 추천 길 상세 내용은 ‘대한민국 걷기여행길 종합안내 포털(koreatrail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걷기여행길 포털은 전국 540개 트레일 1360여 개 코스의 정보를 구축한 국내 최대의 트레일 포털사이트로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한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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