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 미국 IT 기업

FERRIMAN 2014. 11. 20. 22:26

입력 2014.11.04 00:16 / 수정 2014.11.04 02:13
 

[궁금한 화요일] 달라지는 IT기업의 정치성향

저커버그도 변했다 … 실리콘밸리 흔드는 공화당 바람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정보기술(IT) 업계 최대 규모 콘퍼런스 ‘드림포스 2014’에 힐러리 클린턴(67) 전 국무장관이 등장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그가 드림포스 기조 연설자(keynote speaker)로 나선 이유는 행사 주최자인 마크 베니오프(50) 때문이다.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솔루션 업체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베니오프는 힐러리의 민간 정치자금 단체인 ‘레디 포 힐러리’에 2007년 원년 멤버로 참여했고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선 운동 당시 총 5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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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베니오프 같은 친민주당 인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던 실리콘밸리가 변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실시될 미국 중간선거가 대표적이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예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공화당 인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정치자금 규모 면에서도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쪽으로 쏠리고 있다.

 사실 실리콘밸리는 1990년대부터 민주당의 ‘텃밭’이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68)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한 92년 이후 총 여섯 차례 대선에서 민주당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을 정도다. 93년부터 8년간 클린턴 대통령은 앨 고어(66) 당시 부통령과 함께 ‘정보화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이 덕택에 미국 전역에 인터넷 등 IT 인프라가 구축됐다. IT 기업에 법인세 부과를 3년간 유예해주는 등 각종 육성책도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고어 전 부통령은 2000년 대선 당시 “인터넷을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선 사람이 바로 나”라면서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본인의 치적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물론 고어의 이 발언은 상대 공화당 후보로 나선 조지 W 부시(68)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당신이 인터넷을 창조했다면서?”라는 비아냥과 함께 네거티브 TV 광고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저커버그(왼쪽)는 자택에서 정치인으론 처음으로 공화당 소속 크리스티 주지사의 모금 행사를 열었다. [샌프란시스코 AP=뉴시스]
 또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낙태·동성애·총기휴대 등 미국 정치의 주요 이슈에서 리버럴한 성향을 띤다. 공화당은 낙태와 동성애를 결사 반대하고 총기휴대를 적극 지지한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기본 정서는 낙태와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총기 휴대에 관해서는 국가 차원의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2014년 실리콘밸리 ‘스타’들은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민주당을 편들지 않는다.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대표적이다. 오바마 캠프 출신 인사를 다수 영입했던 저커버그 CEO는 올 4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정부 감시활동에 대한 끊이지 않는 보도에 실망하고 있다”며 오바마 행정부를 공개 비난했다.

 공교육 개혁과 교육 격차 해소에 관심 많은 저커버그는 이제 공화당 인사들과도 손을 잡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공화당 출신 크리스 크리스티(52) 뉴저지 주지사다. 그는 저커버그의 샌프란시스코 저택에서 정치 자금 모금 행사를 열기도 했다. 크리스티 주지사와 젭 부시(61) 전 플로리다 주지사 같은 공화당 인사들은 민주당이 교사를 해고하고 학제를 개편하는 방식의 대폭적인 학교 구조조정에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초·중등 교육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저커버그는 2010년 뉴저지주 뉴어크 공립학교들에 총 1억 달러를 기부하면서 크리스티 주지사와 가까워졌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공화당이 상대적으로 약세인 동북부(뉴저지) 출신이라는 이점을 발판 삼아 2016년 대선 출마를 희망하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 스타들이 건네준 정치자금을 밑천 삼아 공화당을 상하 양원 다수당으로 만들어 달라며 전국적인 유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빌 게이츠(59)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겸 기술고문도 올해 공화당에 후원금을 냈다. 민주당원인 그가 공화당에까지 기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미국은 별도의 정당 가입 절차 없이 본인이 “내가 민주당원”이라고 공개 선언을 할 경우 민주당원으로 인정받는다.) 게이츠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 운영체제 ‘윈도’에 익스플로러(IE)를 끼워팔았다는 혐의로 기업 분할 위기에까지 몰리면서도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만 2012년 대선 때 오바마 대통령에게 5000달러,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1만2900달러를 냈다. 2010년 중간선거 당시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했던 칼리 피오리나(60) 전 HP CEO,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섰던 멕 휘트먼(58) 현 HP CEO, 실리콘밸리의 두 ‘여걸’이 더 이상 정치적 이단아 취급을 받지 않는 시대가 된 셈이다.

 정치자금 분포를 살펴봐도 올해는 실리콘밸리 내 ‘공화당 바람’이 거세다. 미국 정치자금 조사 전문 민간단체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2010년에는 민주당이 IT 기업 정치헌금액의 55%, 공화당은 45%를 받았지만 올해는 민주당 48%, 공화당 52%로 상황이 역전됐다.

 리드 게일런 공화당(캘리포니아) 자문위원은 “IT기업 경영진이 사회적 이슈에서 공화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인 만큼 규제 완화를 선호하는 공화당의 정책이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사례로 구글은 무인자동차, 배달용 무인항공기, 웨어러블 기기와 같은 신사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관련법과 규제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올해 구글은 공화당 40만6800달러, 민주당 40만2000달러를 기부했다. 과거 4년간 민주당(55%)에 정치자금이 쏠렸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