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인 캐릭터 스파이더맨. 주인공 피터 파커가 우연히 거미에게 물린 이후 거미의 능력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무척 황당무계하지만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의 능력 중 어쩌면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상상일지도 모른다. 현대과학에서 과학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 우리 말로 ‘생체모방과학’이기 때문이다.
생체모방과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물들의 기능들을 실제 우리 인간의 생활에 응용하려는 분야로 이미 다양한 동식물들의 능력들이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새의 비행능력을 모방한 비행기나, 연잎의 표면장력을 이용한 방수복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분야에서 생체모방과학의 혜택을 받고 있다. 스파이더맨은 손목에서 거미줄을 뽑아내 아무 곳이나 이동하고 건물이나 천장을 기어서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 두 능력은 생체모방과학에서 오래전부터 연구가 진행되어 꽤 진척이 된 분야다.
손목에서 거미줄을 뽑아내 아무 곳이나 이동하고 건물이나 천장을 기어서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은 생체모방과학에서 오래전부터 연구가 진행되어 꽤 진척이 된 분야다. ⓒ소니픽쳐스 코리아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뿜어내고 매달려 이동할 수 있을까?
먼저 손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 이 거미줄은 무한으로 생성이 되고 스파이더맨의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튼튼하다. 실제로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5배나 강도가 높다. 거미줄 굵기의 철사를 만들기도 힘들뿐더러 같은 굵기라면 아마 아주 쉽게 끊어져 버릴 것이다. 그만큼 거미줄은 무척 가볍지만 굉장히 촘촘한 밀도를 갖고 있는데, 그 특성을 모방해 생체모방과학자들이 만든 것이 ‘케블라’ 섬유다.
케블라는 무게는 무척 가벼우면서 강철보다 훨씬 강도가 높기에 방탄조끼나 헬멧 등 주로 군사 분야에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가장 튼튼한 섬유인 이 케블라도 아직 거미줄의 줄었다 늘었다 하는 탄성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이 케블라를 사용한다면 공중에 매달리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연속분사장치를 손목에 달고 섬유 앞에다 고리를 단다면 손목에서 거미줄을 뿜어내고 거미줄에 몸을 지탱해 건물 사이를 오가는 스파이더맨의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 속 스파이더맨처럼 그렇게 빠르게 움직였다가는 다른 건물에 부딪히는 순간 몸이 부서지거나 그 전에 손목이 끊어져 버릴 지도 모를 일이지만.
천장에 거꾸로 붙어있거나 벽을 타는 것은 가능할까?
그렇다면 또 다른 스파이더맨의 능력인 벽을 타거나 천장에 거꾸로 붙어있을 수 있는 능력도 실현 가능할까? ‘믹스앤픽스’ 같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 고형접착제를 발에 바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지만 붙어있을 수만 있지 이동할 수 없어 아무 쓸모가 없다. 스파이더맨이나 거미처럼 날렵하게 벽을 타려면 몸을 지탱할 마찰력이 확보되어야 있어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우리 인간의 몸무게 때문에 불가능하다.
거미는 다리나 발바닥에 무수히 난 털이나 융기를 이용해 천장에 붙어있는데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몸무게가 무척 가볍기 때문. 천장면 혹은 벽면과의 접촉면적이 넓지 않더라도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고 또한 다리가 8개요, 몸체의 대부분을 접촉면과 밀착시키기 때문에 몸을 지탱할 수 있는 마찰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 무거운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접촉면을 확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벽타기의 명수인 도마뱀의 발바닥을 모방하면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 도마뱀의 발바닥에는 수많은 융기가 있는데 이 융기와 접촉면 사이에 ‘반데르발스 힘’이라는 아주 미세한 인력이 작용하며 도마뱀은 이 힘을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반데르발스 힘을 활용한 신발이나 접착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인간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신발이 개발된다면 스파이더맨처럼 벽면을 타거나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지만 스파이더맨처럼 다른 생명체의 능력을 갖는 것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다른 슈퍼히어로보다는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 불과 몇십년 후에는 영화 속에서처럼 벽을 타는 일 정도는 실제로 목격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김경우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