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소뇌에서 온다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125
사람의 뇌 그림을 보면 커다란 대뇌와 그 뒤쪽 아래 자그마한 소뇌가 붙어있는 형국이다. 대뇌와 소뇌는 크기도 차이가 많이 날 뿐 아니라 역할도 다르다. 우리가 감성과 지성의 샘이라고 생각하는 뇌는 곧 대뇌를 뜻한다. 소뇌는 대뇌를 도와 몸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보조 뇌라고 생각해 별로 주목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소뇌가 재조명되고 있다. 대뇌에 비해 소뇌가 훨씬 작지만 대신 주름이 촘촘해 활짝 펴면 대뇌 반구를 편 것과 비슷한 넓이다. 즉 넓이로 보면 대뇌의 절반은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인지 활동과 지각 활동에서 소뇌가 활발하게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5월 28일자는 소뇌가 창의성에도 관련돼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연구자들은 창의적인 작업을 할 때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즉 설문 같은 기존의 방법은 설정 자체가 워낙 경직된 실험형태라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자들은 ‘일’ 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실험을 할 때 창의성이 제대로 측정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픽셔너리(Pictionary)라는 게임을 참고해 실험을 설계했다. 픽셔너리는 제시된 단어를 보고 이를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려 다른 참여자가 그림을 보고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다. 연구자들은 피험자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 안에서 제시된 단어를 보고 30초 동안 그림판에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이때 다른 사람이 그림을 보고 단어를 맞춰야 하니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했지만 창의성을 평가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모두 열 개의 단어를 제시하는데 비교를 위해 사이사이 ‘지그재그’라는 단어를 넣었다. 즉 ‘경례’나 ‘졸업’ 같은 단어 사이에 ‘지그재그’를 넣어 fMRI 활동 패턴을 비교했다.
그림 참신할수록 소뇌 많이 동원 돼
남녀 3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뒤 영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제시된 임의의 단어를 보고 그림을 그릴 때와 ‘지그재그’라는 단어를 보고 그림을 그릴 때 뇌의 활동 패턴에서 차이를 보였다. 즉 ‘머리를 써야 하는’ 앞의 경우에서 소뇌와 시상, 왼쪽 두정엽, 오른쪽 상전두, 왼쪽 전전두, 대상회주변/대상회 영역이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반면 지그재그를 그릴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의 뇌 활동 패턴과 비슷했다.
다음으로 디자인 전문가 두 사람에게 그림을 평가하게 했다. 이들은 표현성과 창의성 두 측면에서 각각 점수를 매겼다. 표현성은 그림이 단어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를 평가한 것이고 창의성은 얼마나 재치있게 단어를 그림으로 구현했는가를 봤다. 그 뒤 창의성이 높게 평가된 그림을 그릴 때 fMRI 데이터와 창의성이 낮게 평가된 그림의 데이터를 비교했다. 그 결과 창의성이 높은 그림을 그릴 때 소뇌의 활동이 더 활발했다. 반면 대상회와 전전두엽의 활동은 창의성이 낮게 평가된 그림을 그릴 때 더 활발했다. 반면 표현성에 대해서는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참가자들은 실험이 끝난 뒤 단어를 그림으로 옮길 때 어려웠던 정도를 3단계(쉬움, 보통, 어려움)로 평가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이 단어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작업이 어렵다고 판단할수록 왼쪽 전전두엽의 활동이 더 활발했다. 결국 뇌의 고차원 정보처리 영역으로 실행통제센터로 불리는 왼쪽 전전두엽은 창의성을 오히려 억제한다는 말이다.
반면 소뇌는 움직임뿐 아니라 정신적 표상 활동도 유연하게 일어나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생각을 많이 할수록 그 일을 더 망치게 된다”는 말로 연구를 요약했다. 춤이나 노래, 운동, 창의적 활동 등 다양한 행동을 할 때 뇌의 실행통제센터가 소뇌에게 지휘봉을 넘겨줘야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kangsukki@gmail.com
- 저작권자 2015.06.0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