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웨어러블 기기는 에메랄드
13세기 '에메랄드 안경반지'
‘웨어러블(wearable)’이란 단어는 원래 패션 용어다. ‘착용할 수 있는’으로 번역되는데 사람 몸에 맞도록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부착하는 것을 말한다. 로봇 팔을 착용하면 웨어러블 로봇이 되고 소형 컴퓨터를 착용하면 웨어러블 컴퓨터가 된다.
다양한 기술들이 웨어러블 방식을 채용해 ‘웨어러블 기술(wearable technology)’을 탄생시켰다. 문제는 ’웨어러블 기술‘이란 용어다. 이 용어가 나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최근 기술로 착각한다.
그러나 ‘웨어러블 기술’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전문 매체인 ‘WT VOX’는 지난 21일 논평 기사를 통해 ’웨어러블 기술‘이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웨어러블 기술‘은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시대, 웨어러블 보석으로 시력 교정해
시력이 약한 눈을 강하게 하고, 눈의 피로를 가시게 하려고 자수정·석류석과 함께 에메랄드를 목걸이에 묶어 몸도 치장하고 안경 대신 사용했다. ’쿼 바디스‘란 영화를 보면 로마의 황제 네로(Nero)가 에메랄드를 들고 검투사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고대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로마 시대 만들어졌다고 하는 이 목걸이가 장식용인지 안경 대용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700여 년 전에 제작한 에메랄드 반지는 확실히 안경 대용으로 사용된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근시안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안경 대용 에메랄드를 고안해냈다.
과학자들은 맑은 취록색 보석인 에메랄드를 활용해 반지 형태의 ‘구슬 안경’을 만들었다. 웨어러블 형태의 이 안경이 처음 등장한 것은 1286년, 볼록렌즈를 끼운 ‘외알 안경(eyeglass)’이 1306년에 처음 등장했으니까 정확히 20년 앞선 것이다.
세계 최초의 ‘웨어러블 기술’로 확인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0여년이 지난 독일에서 시간기록 장치인 ‘포마더(Pomader)’가 제작됐다. 이 시계는 들고다닐 수 있었지만 지금 시계와 비교해 매우 무거웠고 시간도 잘 맞지 않았다.
그러나 손목시계가 없던 시절 이 시계는 세계 최초의 웨어버블 시계였다. 유럽에서 웨어러블 기기들이 하나둘 탄생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 놀라운 웨어러블 기기가 탄생했다. 1644년 시작된 청나라 왕조에서 ‘주판 반지(abacus ring)’를 고안해낸 것이다.
이 기기는 반지에 초소형 주판을 부착한 제품이었다. 주판의 크기가 1.2 x 0.7 cm에 불과했다. 주판 알은 9줄로 돼 있었는데 작은 주판 알을 움직이려면 작은 침이 필요했다. 그리고 1억 단위의 수치를 계산해냈다.
당시 상황에서 이 미세한 기술은 일부 왕족과 귀족, 부유층 상인, 주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주판 반지’는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웨어러블 컴퓨터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대전 중 독일군이 사용한 웨어러블 카메라
20세기 들어서는 생소한 모양의 웨어러블 카메라가 등장했다. 1907년 독일 시민이었던 율리어스 노이브로너(Julius Neubronner)는 타이머가 달린 작은 카메라를 훈련된 비둘기에 부착한 후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지역의 모습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이 웨어러블 카메라는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독일군은 군용 통신용으로 사육된 전서구(homing pigeon)에 특별히 제작된 카메라를 부착한 후 전쟁터 곳곳에서 중요한 정보를 취득했다. 공식적으로 항공사진을 촬영한 세계 최초의 웨어러블 카메라였다.
1950년대 이후 미국 할리우드는 가상현실 기술을 개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50년대 중반 에드윈 랜드(Edwin Land)는 3차원 이미지를 구현하는 컬러 영화를 개발했고, 이 기술은 1954년 와이드 스크린의 시네마 스코프로 이어졌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56년 영화 촬영기사였던 모든 하일리그(Morton Heilig)는 ‘센소라마 시뮬레이션(Sensorama Simulation)’ 기술을 개발했는데 3차원 이미지, 입체음향, 냄새 등을 이용해 사람의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오락장치였다.
당초 영화를 위해 개발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기술이 지금 헬멧을 머리에 쓰고 대형 영상을 즐길 수 있는 HMD(Head Mounted Display)의 효시가 됐다. 웨어러블 기기인 HMD는 영화는 물론 수술이나 진단, 비행연습, 오락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웨어러블 기술’은 지금 우리 일상생활은 물론 군사용, 패션, 이동통신기기, 디지털 제품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무섭게 확대해나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컴퓨터 기술 외에 기계, 디자인, 감성공학, 김리 등의 분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이 기술의 뿌리가 매우 오래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래 전 우리 조상들에게 웨어러블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나 받쳐줄 기술이 없어 신제품 개발이 지연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첨단 기술을 만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 저작권자 2015.07.2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