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격증·현지어 중요 …“한두 사람 말만 믿다간 낭패”
[중앙일보] 2015.09.16
베트남 하노이 국민경제대학에서 3년째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광수(68)씨가 캠퍼스에서 야외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 교수 출신인 그는 “퇴직 전부터 미리 준비한 덕에 일할 기회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아프리카 북단 튀니지의 국립도서관 사서로 인생 2막을 연 고병률(61)씨.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준비해온 덕에 그는 퇴직을 하기도 전 튀니지에 일자리를 잡았다. 국내에서 사서직 공무원으로 30여 년간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 모집에 도전해 꿈을 이뤘다. 사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튀니지 문화와 언어도 익혔다. 고씨는 “퇴직 후엔 지중해처럼 이국적인 곳에서 일하면서 살고 싶어 일찍부터 목표를 정해 준비해왔다”며 “그 덕에 퇴직 후 공백 없이 바로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해외로 인생 이모작 성공하려면
국내서 통하면 개도국선 선진기술
사무·행정·창업 자문 수요도 많아
한인회 통해 현지 상황 꼼꼼히 파악
퇴직 후 공백 줄여야 일 찾기 쉬워
#국내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일하다 라오스 진출을 결심했던 정장후(57)씨. 한국에선 IT가 특별할 게 없지만 라오스 같은 개발도상국에선 꼭 필요한 선진 기술이라는 데 착안했다. 그러나 현지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서둘러 진출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가져간 재산을 거의 다 날리고 거리로 나앉을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라오스 외교부 전산망 공사를 맡으면서 성실성과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겨우 고비를 넘겼다. 신뢰가 쌓이고 나니 수주는 이어졌고 이를 발판으로 컴퓨터 판매점에 이어 농업 법인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퇴직 후 해외에서 찾는 인생 후반기 일자리엔 위험이 따른다. 낯선 환경에서 홀로 일어서야 한다. 사기를 당하거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근무 여건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자면 전문성과 사전 준비가 필수다. 익숙한 일이어야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생계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감안해야 한다. 최봉식(60) 세계한인무역협회 하노이 지회장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건너온 사람들 가운데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어렵게 생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저개발 국가라고 얕보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다만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퇴직자에겐 해외 이주의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한국의 기술 수준이 상당히 앞서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먹히면 개발도상국에선 선진 기술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진출 분야가 의료 봉사나 건설이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IT는 물론이고 사무·행정 자문과 창업·취업 지원 업무에 대한 수요도 많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증을 따면 훨씬 유리하다. 현대상선에서 18년간 해외 업무를 담당하고 조기 퇴직한 뒤 3년 동안 준비해 미국 관세사 자격증을 따낸 김종열(59)씨는 정년이 따로 없는 전문직으로 뉴욕에서 일하고 있다.
퇴직 후 공백이 길어질수록 해외에서 일자리를 잡을 기회는 줄어든다. 김영희 한국무역협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장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퇴직자는 늘고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나 준비 없이 실행에 옮기는 사례가 많다”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제대로 인정받자면 퇴직 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 이주인 만큼 현지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동아건설에서 퇴직해 르완다에서 건설 자문 일을 하고 있는 최종현(60)씨는 “의사소통만 되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하고 빠르게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출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더욱 중요하다. 예컨대 한국에선 일상화된 24시간 자동차 애프터서비스 긴급 출동이 라오스 같은 나라에선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직원에게 야간 근무를 시켰더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부인들의 전화가 쇄도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현지에 가기 전 한인회와 밀접하게 소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현지 사정을 사전에 파악한다면 빠르게 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 현지에 진출할 때 한두 사람의 말만 믿는 것도 금물이다. 김종규 세계한인무역협회 타슈켄트 지회장은 “성급하게 한두 사람 말만 믿다간 사기을 당하기 쉽다”며 “현지에서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낭패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명규 코라오그룹 부회장은 “언어는 물론이고 현지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많을수록 매끄럽게 해외 반퇴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동호 선임기자, 염지현·이승호 기자, 김미진 인턴 기자 hope.bantoi@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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