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인터넷 없이 사셨어요?’ 라고 물어보지만, 이 아이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인공지능(AI) 없이 사셨어요?’ 하고 물어볼 것이다.”
인공지능(AI) 비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삼성전자의 4일 간담회 자리에서 다그 키틀로스 비브 랩스 최고경영자(CEO)는 AI가 바꿀 세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AI가 보편화된 세상은 인터넷 후의 세상 만큼이나 크게 바뀔 거란 얘기다. 삼성전자의 AI 시장 진출 발표로 AI 시장에 대한 국내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AI 비서(Assistant)’ 시장은 미래 IT 산업의 패권을 좌우할 열쇠로 여겨진다.
세계에서 소프트웨어깨나 한다는 회사 치고 AI 비서 시장에 안 뛰어든 회사가 없다. 이들 중에 AI 비서로 돈 버는 회사가 없는 것도 현 주소다. 성장성이 커서 놓칠 수는 없는 시장,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비즈니스 모델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미지의 시장이 AI 비서 시장이다.
AI 비서 서비스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음성 명령 인식 기능’이다. 지금은 손을 놀려 PC나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찾고 서비스를 요청하지만, 이 모든 활동을 목소리가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시만 하면 대신 실행해주는 비서 같다고 해서 AI 비서라는 이름이 붙었다.
AI 비서 시장은 최근 급팽창하고 있다. 2011년 아이폰에 ‘시리’를 탑재하며 이 시장을 개척한 애플, ‘에코’라는 스피커에 ‘알렉사’라는 AI를 탑재해 스마트홈 서비스 구현에 나선 아마존, 가정용 스피커와 스마트폰을 통해 AI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를 소개한 구글 등이 뛰어들었다. 국내서도 올해 SK텔레콤(누구)과 네이버(아미카)가 진출했고, 삼성전자까지 나섰다.
시장성은 어느 정도일까. 최승진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시장성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본격화하면 모든 기기와 사람, 소프트웨어가 하나로 연결될 텐데 이 연결고리를 음성 인식 시스템이 맡을 것이다. 결국 AI 비서 시장의 주도권을 쥔 기업이 모든 사물과 사람을 연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AI 비서 시장 역시 대부분의 인터넷·모바일 서비스가 그렇듯이 ‘승자독식’의 시장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더 정확하고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필수다. 사용자가 늘면 데이터도 늘어난다. 사용자 수와 데이터량의 선순환을 구축하는 1등 기업만 파이를 점점 더 키우게 된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최근 많은 기업이 발빠르게 AI 비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도 시장 선점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아직은 뚜렷한 선두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국내 기업들도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I 비서 서비스가 소개된 지 5년 정도 됐지만 아직 사용 소비자가 적은 이유는 뭘까. 업계는 가장 큰 장벽이 ‘자연어 처리 기술’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째, 발음을 알아듣고 이를 받아쓸 수 있는 음성 인식 기술, 그리고 두번째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분석하는 자연어 인식 기술이다. 첫 단계인 음성 인식 기술은 최근 5년 사이 크게 발전했다. 오차율이 5% 안팎에 불과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이 보편화된 덕이다. 하지만 두번째 단계인 자연어 처리 과정에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뉘앙스로 그 말을 했는지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신진우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스마트폰 강자 애플과 삼성은 사용자의 음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음성 인식 기술에서 앞서 나가는 반면, 번역기와 검색 포털로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구글은 자연어 처리에 더 강점이 있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며 “결국은 AI 비서가 얼마나 말귀를 잘 알아듣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떤 기기를 통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에 대한 컨셉트도 회사마다 다르다. 시장에서 편의성을 인정받은 컨셉트가 아직 뚜렷이 없단 뜻이다.
방향성은 있다. 독자적인 시스템 구축보다 외부 서비스 제공자들을 끌어들여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다. 지난달 AI 비서 아미카를 공개한 네이버가 제빵 프랜차이즈기업 SPC나 쇼핑몰 GS숍, 음식배달 앱 ‘배달의 민족’ 등과 제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내년 하반기 내놓을 AI 인터페이스를 모든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개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 교수(빅데이터연구센터장)는 “아마존이나 구글홈의 가정용 스피커는 시장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 결국 스마트폰·가전을 보유한 기업이 AI 서비스를 확산시킬 수 있을 거란 게 시장의 전반적 예측”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 수준의 음성 인식 서비스를 ‘비서’라고 부르거나 의인화해서 소비자 기대를 지나치게 키우기보다 ‘음성 조력자’라는 컨셉트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임미진·김경미 기자 mi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