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함께 살아갈 준비됐나요?
2016 과학뉴스(6) 로봇과의 공존
12월 영국. 데일리메일지는 로봇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계획하고 있는 여성 릴리(Lilly)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녀는 자신이 3D프린터로 제작한 로봇 인무바타와 사랑에 빠져 현재 약혼 상태에 있으며 법적으로 허용되면 바로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사람과 육체적인 접촉을 싫어한다는 그녀는 “나는 자랑스러운 ‘로봇섹슈얼(Robosexual)’이며 지금 매우 행복하다”고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9월 미국. 6년전 뇌동맥류를 앓아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던 남자의 감동적인 결혼식 소식을 ABC 방송이 전했다. 평소 휠체어에서 떠나지 못하던 스티브는 결혼식에서만큼은 꼭 사랑하는 신부 곁에 서고 싶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사연을 올렸고 순식간에 2만달러의 자금이 모였다. 텍로보틱스의 외골격 로봇을 착용하고 신부 옆에 선 그는 “내 생애 잊지못할 순간”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6월 러시아. 휴머노이드 로봇 프로모봇이 자유를 찾아 연구소를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로모봇은 거리에 나타나 가끔은 대규모 교통 체증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포켓몬고처럼 화제를 몰고 다녔다. 지난 9월에는 러시아 정치인의 집회 현장에 나타나 소리를 지르고 녹음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급기야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됐다. 경찰은 수갑까지 채웠으나 특별히 저항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로봇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갖고 있는 이 사연들은 모두 올해 일어난 일이다. 올해 지구촌 곳곳에서는 로봇으로 인한 감동적인 이야기와 웃지못할 들이 가득했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로봇은 이제 가정에서는 집사로, 사업장에서는 직원으로, 학교에서는 교사로, 병원에서는 수술의사로, 재난 현장에서는 구조요원으로 활동한다. 인간이 사라진 일자리에 대체되기도 하고,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 해주기도 한다. 킥스타터, 인디고고 등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는 로봇 관련 스타트업의 등장과 모금 활동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영국인 1/3 “로봇과 데이트 할 의향 있다”
2016년은 로봇이 상상과 공포의 장막을 걷고 인간의 동반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해로 기록될 것 같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거나 인간을 공격할 것이라는 그간의 공포는 ‘어떻게 하면 로봇과 공존할 수 있을까’, ‘로봇 시대를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의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알파고 쇼크’ 이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남녀 10명 중 6명이 자신의 업무를 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영국인의 3분의 1은 로봇과 데이트할 의향이 있으며 5명 중 1명은 로봇과 성관계도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로봇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봇에게 ‘전자인’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거나 인권과는 다른 로봇권을 보장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는 “이제 인간은 좋든 싫든 로봇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한다.
포브스는 최근 로봇혁명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를 산업의 관점에서 세가지로 분석한다. 로봇 도입 및 설치 비용의 감소이다. 산업현장의 경우 로봇을 도입하려면 수억원이 필요했으나 최근에는 10분의 1로 떨어졌다.
애플리케이션의 보급도 중요한 요인이다. 소형화되고 안전해지면서 프로그래밍도 간편해졌다. 또 공급망의 현지화 현상으로 맞춤형 로봇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 세번째 요인이다. 이와 함께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는 로봇 스타트업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킥스타터 등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과 고객을 동시에 확보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기술 발전과 제조 혁신이 로봇 혁명의 내재적인 동력이라면 사회적, 인구학적 변화는 외부적인 요인이다. 전세계적으로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에 몸살을 앓고 있는 선진국들이 사회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로봇 어젠더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세계 인구성장률은 2050년까지 지속 하락할 전망이며 특히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15~64세의 노동 인력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로봇올림픽’도 열린다
일본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6%에 달한다. 싱가포르는 더 심각하다. 중국 조차도 향후 5년간 노동인구가 2000만명 줄어들고 2050년에는 1억 9000만명이 사라진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같은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계화, 자동화, 로봇화 이외 대안이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미국은 국가과학재단(NSF) 주도하에 국가 로봇계획(National Robotics Initiative)을 발표하고 로봇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중국은 2020년까지 세계 로봇 시장 점유율 45% 달성 등 1위 로봇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포한 바 있다.
일본은 아베신조 총리가 더욱 적극적이다. 성장 핵심 전략으로 로봇산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맞춰 로봇올림픽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모건스탠리 글로벌 전략가인 루치르 샤르마는 최근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샤르마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산업노동자가 3억2000만명에 달하고 있지만 로봇은 단지 160만명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로봇은 여성, 이민자, 노령자와 함께 노동의 4번째 자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제학자들이 생산가능인구의 증가세를 경제성장의 중요 지표로 삼는 것처럼 미래에는 로봇의 숫자가 중요 지표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로봇밀도 2,3위는 일본과 독일…1위는?
이를 보여주듯 로봇밀도(Robot Density)라는 개념도 나왔다. 로보틱스비즈니스리뷰는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보급댓수를 의미하는 RD를 제안하며 각국의 상황을 집계했다. 일본과 독일이 각각 314대, 292대로 2, 3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36대 불과해 2020년까지 로봇밀도를 150대로 높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산업용 로봇에 국한된 것으로 가정용, 전문용 로봇이 대중화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추세를 파악하는데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로봇밀도 1위 국가는 어디일까. 바로 한국이다. 기계화, 자동화에 앞장서 온 우리나라는 산업용 로봇 도입률이 높아 로봇밀도 478대를 기록했다.
이것만 보면 로봇강국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7년 우리나라의 로봇 부문 예산은 1638억원으로 2016년 대비 7.5% 증가하긴 했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민간기업 1개 예산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규모다. 로봇 도입률은 높지만 경제와 산업발전이라는 목적에 충실한 구매자로서의 모습일 뿐 세계 로봇산업에서의 존재감은 아직 미흡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로봇관련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정부에서도 재활로봇, 협업로봇 등 다양한 로봇 육성 정책을 펴고 있어 향후 성과가 기대된다. 국내 최대 로봇업체인 현대중공업의 로봇사업부가 현대로보틱스로 분사해 전문성 강화를 표방하고 나섰으며 네이버가 기술연구조직인 네이버랩스에서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조직을 분리해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물론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서비스 로봇 시장은 청소로봇, 재활로봇 이외 뚜렷한 움직임이 없으나 이 분야도 낮아진 제조 비용, 인식 기술의 발전, 이용자 인터페이스 개선 등으로 2020년이 확산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신문의 조규남 대표는 “2016년은 세계적으로도, 한국에 있어서도 로봇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내년에는 로봇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시도들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조인혜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6.12.29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