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마이크] 그는 왜 50년 해로한 아내 죽였나
입력 2017-03-03 02:52:39
수정 2017-03-03 06:23:25
‘치매 환자 100만 시대’ 중앙일보가 취재했습니다
저는 지금 차가운 쇠창살 안에 갇혀 있습니다. 아내를 살해한 죄목입니다.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아내였습니다. 2년 전 겨울은 다시 떠올리기도 몸서리쳐집니다. 제 나이 일흔넷. 우린 50년을 서로 아끼며 살아왔습니다. 자식 둘을 대학에 보냈고 출가도 시켰습니다. 아내와 둘이서 평온한 황혼을 맞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운명은 도둑처럼 찾아왔습니다. 한밤중에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내는 중증 치매란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내는 하루하루 낯선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험한 말 한마디 입에 담지 못하던 사람이 "이 새끼야"라고 욕을 해댔습니다. 음식을 먹일 때마다 몸부림을 쳐 양손을 침대에 묶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을 저는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오히려 죄인의 심정이 돼야 했습니다. 매달 120만원씩 드는 병원비를 대는 자식들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밤낮없이 아내의 기저귀를 갈고 음식을 먹이다 설상가상 저까지 이곳저곳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마저 쓰러지면"이란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아내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장례식장이며 헌옷·가구 매입하는 곳까지 알아보고 꼼꼼하게 메모도 남겼습니다.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경황이 없을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유서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아. 우리 인생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너희에게 남겨줄 것이 적어 미안하구나."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아내의 목을 눌렀습니다. 저도 농약을 들이켰습니다. 아내 없이 사는 삶에 더 이상 미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대신 아내를 살해한 피고인으로 난생처음 법정에 섰습니다. 징역 3년.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런 비극이 우리 부부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생의 연마저 끊어 놓는 황혼의 비극, 치매. 정녕 가족에게만 내려진 천형인가요.
(※위 사례는 2015년 서울남부지검에서 살인죄로 기소된 A씨가 재판 과정에서 했던 증언 등을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가정 해체하는 치매=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치매 환자 수는 2016년 68만 명으로 집계됐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2020년 84만 명, 2024년 100만 명, 2050년에는 2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치매 간병이 가족 몫으로 치부돼 가정 파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1월 인천 부평에서 고모(84)씨가 중증 치매 부인 나모(88)씨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두 사람은 결혼한 지 60년이 된 부부로 슬하에 9남매(4남5녀)를 두고 있었다.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고씨의 부인은 4년 전 뇌병변과 치매가 발병했다. 고씨는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밥도 손수 먹이고 대소변도 받아냈다. 하지만 고령인 고씨에게도 1년 전부터 치매 의심 증세가 나타났다. 엉뚱한 소리를 하는가 하면 최근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요양보호사가 오전 시간 방문해 부부를 돌봤지만 저녁 시간에는 고씨 혼자 아내를 간병해야 했다.
현재 고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다. 검찰은 고씨를 치료감호소로 보내 정신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대구에서도 70대 부인이 치매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자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정부도 2012년 치매관리법을 제정하는 등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가 최근 6년간 일어난 황혼 살인 판례 18건을 전문가와 함께 분석한 결과 실제 환자와 가족의 체감 수준은 낮았다.
◆ 특별취재팀=이동현(팀장)·김현예·최모란·이유정 기자, 정유정(고려대 미디어학부 3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