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제조 혁신의 주역으로 떠오르다
로봇이 바꾸는 세상(10) 공장 로봇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광둥성 제조기업들은 이제 사람이 아닌 로봇으로 생산을 한다. 중국 최대 로봇 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2015년 말 기준 광둥성 산업용 로봇 보유량은 4만여대로 중국 전체 로봇 대수의 5분의 1에 육박하고 있다. 전체 세계 시장에서도 2.5%의 비중에 달한다.
광둥성 둥관시에 소재한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용 유리 제조업체인 루이비다의 경우 2012년부터 생산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기 시작해 생산 효율이 10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광둥성은 제조 로봇 이외에도 경비원, 청소부, 공사장 인부 등으로 일할 수 있는 로봇 노동자 개발을 의뢰하면서 이스라엘 로봇협회와 2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2014년 6월 발표한 신성장전략 개정판에서 로봇에 의한 새로운 산업혁명을 선언했다. 로봇은 ‘일본 신성장전략 실현의 최후의 숨겨진 공(球)’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일본 로봇 시장을 제조 분야에서 2배로, 서비스 등 비제조 분야에서 20배로 확대시킨다는 방침이다. 로봇 생산 규모를 늘리는 것도 있지만 로봇을 통한 제조 생산성을 현재 1%에서 2020년 2%까지 향상시킨다는 포석을 깔고 있다.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은 각기 다른 이유로, 또 같은 이유로 로봇을 통한 제조혁신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노동력 부족과 높은 인건비로 중국과 남미 등으로 옮겨갔던 생산 라인이 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로봇으로 인한 생산 단가 하락과 저유가 호재까지 겹치면서 제조업 부흥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자국 중심주의까지 결합돼 이 같은 현상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포드, GM, 피아트 크라이슬러 등 미국계 자동차 업체들은 멕시코 공장 신설, 증설을 포기하고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증설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해외 공장을 운영하는 미국 제조업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생산 기지를 미국에 짓겠다는 응답이 31%로 20%의 중국을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톡톡히 해온 중국은 이제 저가 노동력으로 제조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면서 빠르게 로봇 생산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 흐름은 물론 중국 기업 조차 미국에 공장을 증설하겠다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은 중국을 더욱 조급하게 만든다.
게다가 인도까지 우수한 인력과 저렴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조업 비중을 현재 15%에서 2022년 25%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중국은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보급대수를 의미하는 로봇밀도(RD)를 2016년 36대에서 2020년까지 150대까지 높이겠다는 전략을 발표하면서 제조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일본의 속내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은 인구감소, 고령화 등으로 로봇과 자동화에 일찌감치 눈을 돌려 로봇 산업의 강자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중국은 물론 이스라엘, 인도 등으로부터 추격을 받으면서 위기의식이 감돌고 있다.
조은진 KOTRA 오사카 무역관에 따르면 일본의 로봇 가동 대수는 2000년 39만 대에서 2012년 31만대로 줄어들었고 세계 로봇 가동 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85년 67.2%에서 2012년 25.1%로 급감했다.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로봇을 공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입해 제조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두 마리 토끼 전략을 세우고 있다.
최근 일어나는 모든 제조 혁신 전략의 중심에는 로봇이 있다.
그동안 제조업은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전하면서 그 비중이 낮아지다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재조명받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노동집약적 업종인 제조업을 수익성 높은 첨단 업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조업 새판짜기는 로봇과 자동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업종과는 달리 공장에서의 로봇은 보조장치나 지원도구가 아니라 공장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로봇은 의료 분야에서는 정밀 의술을 구현하는 보조 장치로, 국방 분야에서는 위험 지역을 누비는 첨단 장비로, 서비스 분야에서는 고객 경험을 확장시켜주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제조업에서는 로봇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1913년 포드자동차가 컨베이어 벨트 생산라인을 도입한 이후 공장은 100년 동안 자동화(FA)가 지속적으로 확장돼왔으며 로봇은 이제 그 정점을 찍고 있다. 선진국 공장에서는 로봇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자산이 됐다.
무엇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가장 큰 이유다. 초기 비용만 투자하면 24시간 공장을 돌릴 수 있으며 유지관리 비용도 크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 광둥성 제조기업 루이비다의 경우 월 1500만개에서 2000만개 제품을 만드는데 6000명의 노동자가 할 일을 로봇으로 대체해 1800명으로 줄였다. 로봇 투자 비용이 5000여만 위안이 소요되지만 비용 회수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루이비다 측의 설명이다.
게다가 인건비는 전세계적으로 지속상승하고 있다. 인구가 많은 인도나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주장 지역의 일반 노동자 인금이 지난 2008년 860위안에서 2015년 1895위안까지 2배 넘게 올랐다. 로봇 1대가 8명의 노동자 몫을 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렇게 보면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인건비 문제에 앞서 젊은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싱가포르, 일본 등 고령화사회는 로봇의 도움을 얻지 않고서는 사회 유지가 힘들 정도가 됐다.
전형적인 고령화 현상에다 외국인 노동자 제한정책으로 극심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싱가포르는 오는 2018년까지 3억 3300만 달러를 투입해 인력을 대체할 로봇 개발 및 배치에 나설 계획이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싱가포르의 경우 공장 로봇보다는 식당, 호텔, 가게 등 서비스업에 로봇을 투입할 계획이며 2200개에 이르는 레스토랑 등은 로봇 직원으로 숨통이 트이기를 고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인력 대체와 비용 절감을 넘어 로봇을 통한 제조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앙일보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같은 해 4월 문을 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가스터빈 공장 인근의 혁신작업장을 직접 방문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GE의 이 공장은 로봇과 3D프린터, 레이저마이크로젯 등을 갖추고 사물인터넷(IoT)망으로 공장 설비를 연결한 스마트 공장의 모범이라 부를만하다.
캐나다 브로몽, 인도 푸네 공장과 함께 GE의 3대 공장으로 꼽히며 총 7500만달러를 들여 완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작업장에서는 센서와 레이더를 장착한 자율 로봇이 돌아다니는데 돌발 상황이 생기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최적화됐다. 로봇끼리 상호작용하며 업무를 나누거나 협업하는 장면도 포착된다.
3D프린팅도 제조 혁신을 거들고 있다. GE 그린빌 공장은 300대의 3D프린터를 운영하면서 시제품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장비 관리나 유지보수가 필요한 경우 장비가 스스로 작업자에게 알리는 등 GE가 추구하는 ‘생각하는 공장’을 지향하고 있다.
제프 번스타인 미국 로봇협회 대표는 “로봇은 미국 제조기업이 더 싼 값의 노동력을 가진 해외 기업에 맞서 경쟁하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특히 협업 로봇의 경우는 인간 노동자가 고부가가치 노동을 하도록 지원하기 때문에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인간-로봇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표적인 제조 혁신 사례라고 보고 있다.
제조 공장과 함께 물류 창고에서의 로봇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의 리서치 매니저인 존 산타게이트는 “창고 자동화는 꽤 오랜시간동안 진전이 이뤄졌고 이제는 로봇에 의한 효율 개선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자동화가 고정된 반복적인 작업과 프로세스에 적합한 반면 로봇은 확장성과 유연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업무 변화에도 매우 재빨리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마존은 물류 로봇 도입에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시애틀타임즈에 따르면 아마존은 지난해 4만 5000대의 로봇을 20개 배송센터에 배치했으며 이는 1년전보다 50%가 늘어난 것이다. 더 나아가 아마존은 최소 3명으로 운영되는 대형 슈퍼마켓을 구상하고 있다.
시애틀에 무인 식료품점 아마존고를 오픈한 아마존은 앞으로 로봇을 활용해 제로 인력에 가까운 매장 운영을 꿈꾸고 있다. 특히 2층에 1만 5000개~2만개의 상품을 진열하고 이를 로봇이 픽업하고 포장하도록 함으로써 영업이익률을 식품 유통 업계 평균 1.7%에서 20%까지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전용 식료품 소매점인 오카도 역시 인공지능과 로봇을 통한 완전 자동화 잡화점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오카도는 자사의 창고가 아마존의 창고보다 더 많이 자동화돼있다고 강조한다. 4만 8000라인에 이르는 상품 대부분이 냉장 혹은 냉동을 필요로 하는 신선식품이기 때문에 자동화 로봇의 수준이나 당일 배송에 대한 노하우가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로봇을 통한 제조 생산성 향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여전히 높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로봇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동자 1만명당 478대로 일본 314대, 독일 292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기반은 잘 갖춰져있는 셈이다.
제조업으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조 로봇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단순 공장자동화가 아닌 협업 로봇이나 지능형 자율 로봇 등을 통해 제조업의 혁신과 고부가가치화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올해 중소, 중견기업의 스마트공장화를 적극 지원해 국내 스마트공장을 5000개로 늘리고 2020년까지 1만개의 스마트공장을 구현한다는 방침이다.
- 조인혜 객원기자저작권자 2017.03.0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