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명의(名醫)’, 로봇과 AI가 만든다
로봇이 바꾸는 세상(12) 의료 로봇
최근 국내 의료 산업계에 낭보가 들려왔다. 로봇신문에 따르면 2007년부터 수술용 로봇 개발을 추진해온 미래컴퍼니가 지난달 15일 수술용 로봇 ‘레보아이’의 임상시험 종료 보고서를 식약처에 한 결과가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립샘암과 담석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한 바에 따르면 환자들은 후유증없이 제대로 회복했다는 것이다. 외과 수술의 대명사인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가 1999년부터 세계 수술 로봇 시장을 독식한 지 근 20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물론 품목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출시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나라 기술로 수술 로봇 상용화를 이뤘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로 여겨진다.
미래컴퍼니의 임상 시험은 국내 대표 병원 가운데 하나인 세브란스병원이 진행했다. 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로봇 수술을 도입하고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로봇수술트레이닝센터를 개소하는 등 로봇 수술에 가장 앞서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로봇 수술은 2017년 2월 기준 누적 1만 6000건에 이르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실적에 속한다. 그동안 확보한 풍부한 로봇 수술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수술 로봇 국산화와 대중화는 물론 국내 의료 로봇 수준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아산병원은 아예 세계 로봇 수술의 대명사 다빈치 개발업체인 인튜이티브 서지컬과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맺었다. 아산병원의 로봇 수술 임상 경험과 인튜이티브사의 의료 로봇 연구 역량을 접목해 차세대 의료 로봇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김송철 서울아산병원 로봇수술센터 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약을 통해 로봇 수술의 임상 수준을 더욱 높이고 기초 연구 개발과 차세대 의료용 로봇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산병원은 2007년부터 로봇 수술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3년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로봇수술트레이닝센터를 개소하는 등 로봇 수술 도입 및 적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브란스병원과 아산병원의 최근 행보는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 로봇의 중요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의료 시장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져올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빈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외과 수술에서 의사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해온 로봇은 이제 질환 전 영역과 치료 전 과정에 발을 담글 태세다. 채혈과 비파괴 X선 검사는 물론 간질환, 심혈관질환, 뇌졸중, 척추, 관절, 부인과 질환, 백내장 수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암 진단, 치매 예측에서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기 진단 및 예측에서부터 성공적인 치료까지 로봇이 의료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미래의 명의(名醫)는 단지 인간 전문의의 전문 지식과 손 기술,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한 정확한 예측과 로봇을 이용한 보다 정교한 치료가 결합돼야만 가질 수 있는 이름이다.
외과 수술로 본 로봇의 장점은 명확하다. 로봇 수술이 시작된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에서는 로봇 수술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으나 성공 사례가 수만 건에 이르면서 신뢰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다빈치 로봇을 이용한 수술 건수가 300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수술장에서의 로봇은 손떨림, 긴장, 시야의 제한 등 신체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취약한 인간 의사를 도와 정확한 수술을 가능하게 하며 압도적으로 넓은 시야, 3차원 화면 등으로 복잡하고 미세한 영역의 수술도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최소한의 침습으로 수술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술 후 예후가 좋고 회복이 빠른 이점이 있다. 시장분석 기관에 따르면 의료용 로봇 시스템 시장은 2020년까지 17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단점은 가격이다. 다빈치 로봇의 가격은 20억원 이상이며 매년 유지보수 비용으로 2억원 가량을 내야하기 때문에 수술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로봇 수술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하지만 최근 미래컴퍼니 이외에도 버추얼 인시전, 500달러 수술 로봇을 선보인 플렉스덱스 서지컬 등 다빈치의 아성에 도전하는 후발주자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어 조만간 가격 경쟁도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암진단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역할이 눈부시다. IBM 왓슨은 이미 암진단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미국 앤더슨 암센터에서 왓슨을 이용한 결과에 따르면 암진단 정확도가 96%에 이르러 전문의보다 높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머신러닝을 통해 2500만개의 의료 논문을 일주일내에 읽어내고 인간 의사가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암치료법을 제안하는 등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스탠포드대학은 지난해 피부암을 진단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나선형의 신경망 알고리즘인 구글넷 인셉션 v3 아키텍처 위에서 구축한 이 시스템은 2000개 이상의 질병으로부터 13만개 피부 병변 이미지를 사용해 알고리즘을 최적화해 구현됐다. 특히 21명의 공인된 피부과 의사들이 유사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해 비교 분석을 했는데 그 결과 피부과 전문의의 진단과 비교해서도 손색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휴스턴감리교연구소는 유방X선으로 유방암의 가능성을 95%의 정확도로 파악해 의사들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수 백만 개의 기록을 짧은 시간 내에 지능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조직검사를 줄여 비용은 물론 환자의 불안감과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환자의 차트를 보고 진단을 내리는데 있어 사람보다 30배 가량 빠르다. 미국의 경우 전국적으로 매년 1200만회의 유방X선 검사가 실시되고 있지만 암으로 오진하는 경우가 5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심장 질환에서는 AI를 이용해 심장질환자들이 언제 사망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에 대비해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런던의료원이 개발한 AI시스템은 어지럼증, 졸도 및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폐고혈압 환자 256명의 혈액 검사 및 3D 심장 모델을 분석한 결과 그 이듬해 환자가 사망할 확률을 80%의 정확도로 예측해냈다. 인간 의사의 정확도는 약 60%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예측을 통해 인공 심박동기 등 효과적인 치료를 시기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런던의료원 측의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심장 질환으로 4명당 1명꼴로 사망하고 유럽에서는 심장병이 전체 사망자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우리나라도 최근 10년간 심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66만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사망자의 26.4%에 이르는만큼 상용화할 경우 상당히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고 수준의 섬세함과 정밀함이 필요한 안과 수술에서는 소형 로봇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옥스포드대학 안과 전문의 로버트 맥라렌은 로봇 팔을 이용해 70대 노인의 눈 수술을 수행했다. 카메라 영상으로 수술 부위를 보면서 조이스틱을 이용해 로봇의 팔을 절개 부분으로 넣어 망막에서 100분의 1밀리미터 두께의 세포막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테크놀로지리뷰는 로봇을 사용해 육안으로 수행한 최초의 안과 수술이라고 극찬했다. 이 수술에 사용된 로봇은 아인트호벤대학이 설립한 의료용 로봇업체인 프리세예즈BV의 R2D2로 그 이후에도 5명의 안과 수술에 활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캠브리지 컨설턴트가 개발한 로봇 액시스는 백내장 수술을 위한 로봇이다. 백내장은 전세계적으로 2000만명 이상이 수술을 받는 보편적인 안과질환이다. 액세스는 원격 조정되는 캔 크기의 로봇으로 작은 집게발이 장착된 두 팔을 갖고 있어 사람보다 정교하게 작동한다.
특히 백내장 수술은 안정적인 손놀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목표지점에서 몇 밀리미터만 벗어나도 합병증이 생기고 시력복원에 어려움을 겪는다. 액시스는 인간의 실수를 방지하고 보다 정교한 백내장 수술을 가능하게 만든다.
알츠하이머, 뇌졸중, 간질, 파킨슨병 등 뇌 질환 환자들을 위해 환자의 뇌에 이식해 기억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뇌 보철(brain prosthetic)도 기대되는 분야다. 스타트업 기업인 ‘커널(Kernel)’은 뇌의 해마에 이식할 수 있는 작은 바이오닉 보철을 상품화한다는 목표 하에 간질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바이오닉 보철은 보철에 있는 전극이 뇌의 특정 신경을 전기적으로 자극함으로써 뇌로 입력된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도록 도와주는 원리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는 입술과 혀의 움직임을 파악해 음성으로 변환시켜주는 인공지능 기술을 내놨다. 성대마비 등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말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돕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장치의 일종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신생아의 뇌를 통해 자폐증을 예측하는 AI알고리즘을 선보였다. 자폐증 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의 뇌의 부피가 일반 아이들에 비해 증가한다는 사실은 1990년대 중반에 보고됐지만 12개월 미안 아이의 뇌에서 자폐증과 관련된 변화가 발견되고 24개월 안에 질환으로 진단될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정확도도 81%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 조인혜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7.04.06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