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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나노기술, 나노과학

FERRIMAN 2017. 5. 20. 09:49

[인사이트] 연골 고치는 미세로봇, 김 안 서리는 렌즈 … 모두 나노기술의 마술

입력 2017-05-18 01:22:00
수정 2017-05-18 11:31:30
나노로봇이 인체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탐지한 뒤 격멸하는 모습을 묘사한 개념도.

나노로봇이 인체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탐지한 뒤 격멸하는 모습을 묘사한 개념도.

1966년 미국에서 개봉된 공상과학(SF) 영화 ‘환상 여행(Fantastic Voyage)’은 독특한 상상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의사들이 분자 크기로 만들어진 잠수정을 타고 환자 몸속으로 들어가 혈류를 따라 항해한다. 이들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핏덩어리에 도달한 뒤 이를 제거하면서 목숨을 살려낸다.

50년 전 SF 영화에 등장했던 이 같은 상상이 오늘날 실제 구현되고 있다. 전남대 로봇연구소는 17일 "마이크로 의료 로봇을 이용해 손상된 관절 연골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의 고광준 연구원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탑재한 마이크로 로봇을 인체에 주입한 후 조이스틱을 이용해 손상된 연골 부위에 정확히 도달시키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 로봇은 얼마나 작기에 인체에 들어가고, 어떻게 조이스틱의 명령을 따를까. 그 비밀은 바로 ‘나노 기술’에 있다. 나노(Nano)는 10의 -9승(10억분의 1)을 뜻하는 접두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1000을 나타내는 접두어가 ‘킬로’인 것과 같다. 1나노초(㎱)는 10억분의 1초,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를 뜻한다. 1㎚가 얼마나 작은지는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로 설명할 수 있다. 머리카락 한 개를 10만 가닥으로 쪼갰을 때의 한 가닥이 1㎚다. 물질을 쪼갠 최소 단위인 원자 3~4개의 크기가 대략 이 정도다. 1m와 1㎚의 차이는 지구와 축구공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와 새끼손가락 길이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반도체 메모리칩은 10나노급의 미세 공정 기술이 적용돼 집적률을 높였다.

반도체 메모리칩은 10나노급의 미세 공정 기술이 적용돼 집적률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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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노 기술에 대한 정의는 미국 과학재단(NSF)에서 국가나노기술계획 수립을 주도한 미하일 로코가 내린 정의가 가장 널리 인용된다. 그는 "나노 기술이란 1~100㎚ 크기의 물질을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일반적으로는 "원자나 분자를 개별적으로 다루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거나 조작하는 기술"로 정의된다.

    초미세물질을 마음껏 다루는 기술은 의학·제조업·환경보호 등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우선 의학에 적용되면 인간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인체의 질병이 대부분 나노미터 수준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체에 침투한 바이러스는 가공할 만한 나노기계인데 이러한 ‘자연의 나노기계’를 ‘인공의 나노기계’를 주입해 물리칠 수 있어서다. 전남대 로봇연구소가 이번에 개발한 마이크로 로봇은 연골을 재생시키는 치료제에 자성을 띤 산화철(Fe3O4) 나노 입자를 넣어 만들었다.

    미국 IBM이 1990년 크세논 원자 35개를 배열해 쓴 회사 이름.

    미국 IBM이 1990년 크세논 원자 35개를 배열해 쓴 회사 이름.

    고광준 연구원은 "치료제를 주사로 인체에 주입하고 외부에서 자기장을 유도하면 나노물질들이 치료제와 함께 손상된 연골 조직에 정확히 도달돼 치료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의학에서의 나노 기술은 외과적 통제 수준을 분자까지 확대하는 것이어서 이론적으로는 나노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은 없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분자 수준의 외과 치료를 할 수 있어서다.

    제조업에서도 나노 기술 활용이 활발하다. 10개에서 수천 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된 물질을 나노입자라고 하는데, 제품의 표면에 나노입자를 입히면 얇은 층을 형성해 제품 성능을 향상시킨다. 예를 들어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있는 산화티타늄 나노입자로 코팅하면 김이 서리지 않는 유리나 렌즈를 만들 수 있다. 항균물질인 은 나노입자는 휴대전화나 콘돔 등에 항균성 재료로 쓰인다. 나노입자를 입힌 비닐 마루 재료는 긁혀도 흠집이 나지 않고 찢어지지도 않는다. 스키나 스노보드에 원자를 얇게 입히면 얼음이 달라붙지 않고 우주비행선 연료 첨가제, 로켓에도 나노입자를 입히면 성능이 배가된다. 산화티타늄이나 산화아연의 입자는 자외선을 막는 선크림에 사용되고, 이산화규소 결정을 활용한 나노복합소재로는 테니스 라켓을 만들 수 있다.

    항균성이 뛰어나다는 은 나노입자의 모양.

    항균성이 뛰어나다는 은 나노입자의 모양.

    나노 기술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먼저 상향식 공정 기술은 나노미터 크기의 기본 구성 물질을 만든 다음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기본 구성 물질 몇 개를 결합해 큰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일본전기(NEC) 부설 연구소의 이지마 스미오 박사가 발견한 탄소나노튜브가 대표적이다. 과학기술 저술가인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탄소 6개를 원통형으로 연결한 이 구조물은 지름 0.5~10㎚의 크기인데 강도가 철강보다 100배 뛰어나고 전기 전도도는 구리와 비슷해 활용도가 무척 높다"고 말했다. 가벼우면서 강한 골프채·야구방망이 등에 탄소나노튜브가 활용된다.

    반대로 하향식 공정 기술은 이미 존재하는 거시 물질에서 출발해 점차 크기를 축소해 가면서 원자나 분자 크기의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이 이 방식을 사용한다.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들 때 원자들이 고르게 놓여 있는 실리콘 기판 위에 수없이 많은 똑같은 트랜지스터를 그려 넣는데 많이 그려 넣을수록 반도체의 용량이 커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업계 최초로 10㎚ 공정을 이용한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

    신현수 삼성전자 홍보실 과장은 "웨이퍼에 그려 넣는 회로의 간격을 머리카락 한 올을 1만 가닥으로 나눈 정도로 촘촘하게 그려 넣은 것이 성능을 높인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나노 공정 기술을 바탕으로 30년간 반도체칩 분야 세계 1위였던 인텔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가 됐다. 삼성전자는 현재 10나노를 넘어 8나노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나노 기술이라는 아이디어가 인류에게 최초로 제시된 건 1959년 미국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 교수가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면서다. 이 연설에서 파인먼 교수는 브리태니커 사전 24권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을 하나의 핀 머리에 기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렸지만 현재는 손톱만 한 64기가 낸드 플래시메모리 칩 안에 일간신문 800년 치를 저장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물질을 다뤄야 하는 나노 기술은 필연적으로 현미경의 발전과 속도를 같이한다.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현미경은 물체를 선명하면서도 크게 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시광선 대신 전자를 이용한 전자현미경이 개발됐다. 전자의 이동 경로를 휘어지게 해 마치 볼록렌즈가 빛을 모으는 것처럼 전자를 모아 물체를 확대하는 원리를 이용했지만 전자현미경은 아주 얇은 재료를 진공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게 원자현미경이다. 원자현미경은 불이 꺼진 방에서 손을 더듬어 물체의 전체 모양을 알아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원자현미경이 나오면서 과학계와 산업계는 나노 크기의 물질을 측정하고 조작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우주 가는 엘리베이터 건설 … 탄소나노튜브 개발로 탄력「고층 빌딩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쉽게 올라가듯 지구에서 우주로 엘리베이터를 놓는 일이 실제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도 나노 기술이 바탕이 되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과학 소설가인 아서 클라크(1917~2008)가 1979년 펴낸 『낙원의 샘』이라는 소설에서 처음 묘사됐다.

    이 엘리베이터가 현실이 되려면 가벼우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줄이 개발돼야 하는데, 탄소 6개를 결합해 만든 탄소나노튜브가 발견되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탄소나노튜브는 머리카락의 1000분의 1 정도 굵기로 자체 질량의 5만 배나 되는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이런 엘리베이터 개발이 추진되고 있긴 해도 시간이 꽤 걸릴 전망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주최한 한 회의에선 2060년께나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이 가능할 것이란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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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이트] 지구에서 달은 10의 9승m, 태양은 10의 16승m … 거리 세포 핵은 10의 -6승m, 원자핵은 10의 -12승m 크기

    입력 2017-05-18 01:15:30
    수정 2017-05-18 11:32:30
    창공으로 끝없이 올라가면 발 아래 광경은 시시각각 어떻게 변해 갈까. 체세포나 물질을 끊임없이 쪼개 들어가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거리를 재는 단위인 미터(m)를 따라 거시 세계 우주로, 미시 세계 세포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일정한 간격에서 관찰하기 위해 10의 제곱 단위마다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창공으로 10킬로미터(10의 4승 미터) 정도 올라가면 도시 전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휴전선에서 활동하는 정찰기가 대략 이 높이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100킬로미터(10의 5승 미터) 올라가면 지상의 모습은 구름에 가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럽의 국제항공연맹은 우주가 시작되는 지점을 지상 100킬로미터 상공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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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 킬로미터(10의 8승 미터)를 넘어서면 광활한 우주에 혼자 외로이 떠 있는 지구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100만 킬로미터(10의 9승 미터) 더 벗어나면 지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달에 닿는다. 1억 킬로미터(10의 11승 미터) 이동하면 금성과 화성을 만나고, 10억 킬로미터(10의 12승 미터)에서는 목성에 도달한다. 10의 16승 미터에서는 태양, 10의 21승 미터에서는 은하들이 존재한다. 마침내 10의 25승 미터가량 벗어나면 우주 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먼 은하들의 반짝임은 마치 엉겨 붙은 먼지처럼 보인다. 10의 25승 미터에서는 10억 광년 거리에 있는 우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번엔 미시 세계로 여행을 떠나 보자. 10센티미터(10의 -1승 미터)는 손바닥 크기 정도의 단위이고, 1센티미터(10의 -2승 미터)는 엄지손톱 크기의 세계이다. 1밀리미터(10의 -3승 미터) 단위로부터 미시 세계 안쪽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우리 몸의 복잡한 기관들이 눈길을 끈다.

    1마이크로미터(10의 -6승 미터)에서는 살아 있는 세포의 핵을, 0.1마이크로미터(10의 -7승 미터)에서는 생명의 분자인 디옥시리보 핵산(DNA)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작은 세계에서는 미터 대신 ‘옹스트롬’이라는 단위를 쓴다. 스웨덴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단위인데 10의 -10승 미터가 1옹스트롬이다. 100옹스트롬(10의 -8승 미터)에서는 DNA 분자의 구조인 이중나선을 보게 되고, 마침내 10옹스트롬, 즉 1나노미터(10의 -9승 미터)에서는 분자를 만날 수 있다. 과학기술 저술가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원자들의 집합체가 분자인데 분자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아 1500만 종 이상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해마다 수백 가지가 새로 발견되거나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이뤄진 3원자 분자이고 우리 몸을 형성하는 단백질 분자는 수백만 개의 원자로 구성돼 있다.

    1옹스트롬(10의 -10승 미터) 단위로 쪼개 들어가면 원자의 표면이 눈에 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자 중에는 헬륨이 지름 0.1나노미터로 가장 작다. 가장 큰 원자인 우라늄은 지름이 0.22나노미터 정도 된다. 이처럼 원자는 대부분 크기가 엇비슷하며 1나노미터를 밑돈다. 1옹스트롬 이하의 세계로 들어가면 원자의 내부를 볼 수 있는데 0.1옹스트롬, 곧 10피코미터(10의 -11승 미터)는 원자의 내부를, 1피코미터(10의 -12승 미터)는 원자핵을, 1펨토미터(10의 -15승 미터)는 양성자의 세계를 나타낸다.

    박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