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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4차 산업혁명

FERRIMAN 2017. 7. 3. 20:41

[시론]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세 가지 착각

입력 2017-05-22 02:51:28
수정 2017-05-22 08:47:09
김태유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김태유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요즈음 4차 산업혁명이 너무 유행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국 근대사가 망국과 치욕으로 점철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조선이 1차 산업혁명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일본이 화혼양재(和魂洋才)를 부르짖으며 메이지 유신으로 1차 산업혁명 대열에 재빨리 편승할 때 조선은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외치며 산업혁명을 거부했다.

산업혁명에 의한 근대적 철강산업과 공작기계 기술로 제조한 총포로 무장한 일본군을, 조선 관군이 대장간에서 만든 화승총으로 대적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새 정부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국가와 민족의 명운을 걸고 꼭 성공시켜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산업혁명에 관한 오해와 착각들이다.

첫 번째 착각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찾아 국가가 지정하고 집중 지원하면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1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른 산업을 희생해서라도 국가가 집중 육성해야 할 필수 산업이 있었다. 석탄·직물·화학·전기·철강 등 기간산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런 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빅데이터·로봇·3D프린터·사물인터넷(IoT)·생명공학·나노기술 등 수없이 많은 신산업과 신기술들이 단기간에 생성하고 소멸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서로 초연결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특정 분야를 지정하고 집중 지원에 나서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4차 산업혁명의 일익을 담당하게 될 생명공학, 그중에 줄기세포가 과거 한때 한국의 희망으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1999년 복제 송아지 영롱이로 촉발된 황우석 신드롬의 비극적 결말은 특정 분야에 대한 과잉 기대와 몰아주기식 지원이 빚은 정책적 참사였다.

예를 들면 야구는 수퍼스타 한 명을 집중 지원해서 홈런 한 방으로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안타가 많이 나와야 이길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경우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성공사례가 터져 나와야 한다. 산업과 기술을 선택하는 것은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발로 뛰는 기업가와 과학 기술자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에 맡겨야 한다.

두 번째 착각은 ‘4차 산업혁명이 대량 실업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보고서 ‘직업의 미래’에 따르면 인공지능·로봇·기계화 등에 의해 2020년까지 약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500만 개의 직업이 없어지면 그들이 모두 실업 상태로 내몰릴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는 해고된 노동자에 의해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기계 파괴 운동이 일어날 만큼 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지만 기계로 대체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고용이 창출됐다. 다른 한편, 기계에 의한 노동의 대체는 대량 실업을 초래하기보다는 1인당 노동시간을 단축시켰다.

토머스 무어는 하루 6시간 노동하는 나라를 ‘유토피아’(1516년)로 묘사했다. 당시 하루 12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시절을 기준으로 보면 현행 주 40시간 노동은 유토피아에 이미 근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주 4일, 주 3일 근무제의 진정한 유토피아를 향해 성큼 다가가는 것이다.

세 번째 착각은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지도 모를 부작용에 대해 대비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장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해 4차 산업혁명을 지연시키는 것은 후손에게 죄를 짓는 일이며 조선의 위정척사를 답습하는 것이다. 1760년 불과 74만 명이던 런던의 인구가 1차 산업혁명 후 100년 만에 319만 명으로 불어났다. 주거·교통·위생·치안 등 엄청나게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런 부작용을 우려해서 영국이 산업혁명의 추진을 주저했더라면 대영제국의 영광은 결코 쟁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산업혁명의 가장 큰 속성 중 하나는 선발국과 후발국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는 양극화 현상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경우에도 ‘선착의 효(先着-效)’가 끝까지 유지돼 먼저 시도한 나라가 결국 승리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인류 문명은 1차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대분기(great divergence)를 시작했다. 산업화한 나라는 지배자로 군림하고 산업화하지 못한 나라는 정치적·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해 갔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의 충고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두 번째 대분기 시대의 도래가 한민족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려면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먼저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을 향한 진정한 축복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범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