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dy needs a little time away, even lovers need a holiday. 1980년대 빌보드 차트가 유행하던 시절, 웬만한 음악팬이라면 그룹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를 네모난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귀가 닳도록 반복해 들었을 거다. 중·고생 시절 나도 흥얼흥얼 따라 부르곤 했는데 도입부의 이 가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연인이면 늘 함께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어른들은 뭐가 이리 복잡한가. 이러니까 부모들이 아이들은 유행가 듣지 말라는 것 아닌가.
그때는 몰랐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가끔은 떨어질 필요가 있음을. 너무 가까우면 뜨거움에 자칫 델 수 있음을. 이적은 ‘하늘을 달리다’에서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내린다 해도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 거야"라고 노래했지만 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이카로스도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날개에 붙여 놓은 밀랍이 태양에 녹아내리자 결국 에게해에 빠져 목숨을 잃지 않았나.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랑도, 욕망도 지나치면 화를 입기 십상이다. 뭔가에 푹 빠지면 이성과 합리는 설 땅이 사라진다.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려는 조급함만 가득해질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조급함은 집착을, 집착은 배타심을 낳고 배타심은 종종 공격적인 양태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먼 데서 찾을 것도 없다. 특정 정치인과 정당의 지지자들을 보라. 단순한 ‘빠’를 넘어 칼보다 더 날카로운 언사로 상대방을 찔러대고 있지 않은가. 정치판은 또 어떤가. 여전히 너 죽고 나 살겠다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지 않은가. 요즘 말로 뭣이 중헌디 그리 아등바등하는가. 당장 내년에 대선이 치러지는 것도 아니잖은가.
영화 ‘미저리’에서 쇠망치를 집어 든 캐시 베이츠의 섬뜩한 모습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도 그런 본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조금은 여유를 갖자.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출세, 돈, 권력, 질투, 아집에서 한 번쯤은 자유로워져 보자. 만유인력의 법칙도 적용되기 나름이다. 사과는 곧바로 쿵 하고 떨어져 뭉개지지만 낙엽은 좌우로 흔들리며 사뿐히 내려앉아 겨울을 준비한다. 인간이 사과 신세는 면해야 하지 않겠나.
마침 태양과 지구도 1년 중 가장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계절이다. 목표를 향한 돌진은 잠시 멈추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을 되돌아보기 좋은 때다. 우리네 삶에도 가끔은 쉼표가 필요하다. 그래야 마음속에 겹겹이 쌓아 놓은 욕망의 밀랍이 녹아내리지 않을 수 있다.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