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옵투스자산운용 대표
알파고가 등장하자 프로 기사들은 직업을 잃지 않을까 동요했다. 2년쯤 지난 지금은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선수들끼리 대국하면서 공부하던 바둑 전문 도장은 ‘AI 바둑’으로 공부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TV 바둑 중계 모습도 바꾸어놓았다. 해설자가 하던 형세 판단을 AI가 예상하는 승률로 대신한다. 알파고는 프로기사들에게 착상의 외연을 넓힐 기회를 줬다. 특정 분야에서 사람보다 잘하는 AI가 사람과 공존하는 좋은 모델을 보여줬다.
어떤 과학기술 분야든 전문가로 성장하는 경로에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다. 관찰, 추상화, 유형 인식, 어림셈 능력 등이다. AI는 이런 일을 컴퓨터의 도움을 얻어서 한다. AI의 추상화 사이클이 빨라지고 있어 사람은 점점 더 많은 부분을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처럼 AI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온다. AI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을까 많이들 묻는다. 이런 논쟁은 미래학자들의 영향이 크다. 미래학자의 제1 덕목은 ‘과장’이니 7할 정도만 받자. AI는 알파고 사례처럼 인간 활동의 외연을 넓혀주면서 인간과 공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주된 활동은 오랜 시간을 통해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전환됐다. 미래는 새로운 정신노동 스타일을 요구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던 직업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민간에서도 AI 시대를 틈탄 과잉 마케팅이 많다. 특정 주제로 효과를 낸 AI 프로그램이 모든 분야에서 마법같이 일해낼 것처럼 광고한다. 기술의 본질에 접근해본 적 없는 컨설턴트가 경우의 수 몇 가지 따지는 수준으로 AI나 최적화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친 과장은 겨울을 부르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적당히 하자.
대학에서 전교생이 코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전 세계가 방향을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AI를 필수로 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의 MIT는 AI 단과대학을 설립하고 모든 학과의 커리큘럼에 컴퓨팅과 AI를 포함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한 예산만 1조1000억원이다.
독일은 2025년까지 4조4000억원을 투자해 독일을 ‘글로벌 AI 허브’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도 2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미 버락 오바마 정부 말기에 적어도 3개의 백서를 통해 AI의 미래에 대한 대비와 파격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중국은 2017년 차세대 AI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는 몇 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고, 2030년까지는 ‘세계 AI의 중심국가’가 되겠다고 한다. 전 세계가 AI 경쟁에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한국의 AI 상황은 열악하다. 인력 부족은 심각하다는 말로 모자란다. 한국 정부도 지난 5월 향후 5년간 AI 기술 개발에 2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위원회 안이라 제대로 실행될지 모르겠지만 인력 양성, 학습용 데이터 확보, 컴퓨팅 자원 제공 등 중요한 포인트를 대체로 잘 짚고 있다.
박태환이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 딴 것과 마이클 펠프스가 금메달 딴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한국 체육은 선수 양성형 체육이고 미국 체육은 생활형 체육이다. 미국의 수영 스타는 수없이 많은 동네 수영장에서 나온다. 체육이 국민 건강에 제대로 기여하려면 생활 체육이 돼야 한다. 과학에서 노벨상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후진국형 선수 양성 체육과 비슷하다.
과학기술도 폭넓은 저변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스타가 나오는 체제가 돼야 한다. 정부 계획에 AI 인력 5000명 양성이 포함돼 있다. 이것이 대규모 사업단이나 관료 주도의 이벤트성 프로젝트로만 채워져서는 안 된다. 예산을 할당해서 존재감 없고 인지도 없는 전국의 비주류 집단들이 연습할 수 있는 조그만 ‘낭비성’ 프로젝트들을 많이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전공을 가릴 필요도 없다.
물론 상당수가 지지부진하고, 죽을 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구성원이 훈련을 하게 되고 지도자도 실력이 늘게 된다. 이런 낭비를 통해서 AI 저변이 넓어진다. 다른 분야의 낭비에 비하면 이런 것은 ‘생산적 낭비’라 할 수 있다.
주목을 못 받고 음지에 있던 비주류 과학자가 뒤늦게 노벨상을 받는 일본 사례를 가끔 본다. 일본 과학의 저변이 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학도 저변이 얕은 중소기업과 많이 교류해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우선 저변을 넓혀서 AI가 대중의 과학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옵투스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