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흥의 과학 판도라상자] 우주를 여행하는 물곰을 위한 안내서
입력 2019-08-26 00:18:18
우주를 향한 인간의 꿈과 열망은 인류문명의 시작과 함께 항상 존재해왔다. 우주여행의 꿈이 근대적 형태로 표현된 것은 1865년 쥘 베른의 "달나라 탐험"이라는 SF소설이었다. 그리고 1961년 구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08분 동안 지구궤도를 돌면서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이 보스토크 1호의 성공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희생이 있었다. 1957년 구소련의 과학자들은 강아지 한 마리를 로켓에 실어 발사했다. 당국자들은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성공에 고양되어 인간을 우주공간에 보내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우주공간에 인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불확실한 일이었다. 결국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던 라이카라는 개였다. 라이카는 7시간 동안 뜨거운 열기와 무중력상태를 버티고 귀중한 생체정보를 지구로 보냈다. 구소련의 유인로켓의 성공은 바로 동물의 희생위에 이루어진 인류사적 사건이었다.
생명체를 우주공간에 보내는 것은 생명을 건 도전이다. 하지만 우주의 더 큰 잠재적인 위협은 지구의 생명체일 수 있다. 만일 탐사선이 지구의 미생물에 오염되어 미지의 천체에 도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태양계에는 생명체가 생존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진 천체가 존재한다. 화성뿐 아니라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나 토성의 엔셀라두스는 얼음층 아래에 해양이 존재하고 있어 생명체에게는 좋은 생존조건이 된다. 그래서 다른 천체에 보내는 탐사선은 매우 엄격한 멸균처리 과정을 거친다. 이 멸균처리를 통해 지구의 미생물에 의한 오염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2003년 목성탐사선인 갈릴레오와 2017년 토성탐사선인 카시니는 대기권에 돌입하여 산화되면서 오염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우주공간에서 생명체의 생존은 엄청난 도전이지만 우주공간에 대한 오염 역시 과학이 해결해야 할 큰 과제이다.
지난 4월 이스라엘은 야심차게 달 탐사선인 베리시트호 (히브리어로 ‘창세기’를 의미한다)를 발사했다. 하지만 착륙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이 탐사선은 달 표면에 충돌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최근 이 달 탐사선에 적재된 ‘달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디스크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디스크에는 인간의 DNA정보를 포함한 인류의 지식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디스크 겉면에 크기 1mm정도의 다리가 8개 달린 무척추 동물인 물곰을 약 천 마리 정도 밀봉해서 보냈다는 사실이었다. 이 물곰은 영하 270도의 추위에서도 150도의 뜨거운 상태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리고 굶겨도 방사능에 노출이 되어도 생존하는 지구 최강의 생존능력을 지닌 생명체이다. 베리시트의 충돌의 충격과 열을 계산한 결과 이 작은 무척추동물이 담긴 디스크는 파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물곰의 생존능력과 생명의 경이로움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비밀리에 이루어진 물곰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우주오염의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무수한 환경오염의 폐해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왔다. 이제 과학은 단순히 호기심과 지식충족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을 넘어 우주환경에 대한 책임윤리를 다루는 학문이 되었다. 2030년 까지 탐사선을 달에 보낸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물곰의 우주여행 이야기는 과학적 도전이 갖는 윤리적 안내서 역할을 할 것이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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