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관광시대 성큼…머스크·베조스·브랜슨 ‘쩐의 전쟁’
입력 2020-06-06 00:02:00
급성장하는 우주산업
한국 시간으로 지난 달 31일 오전 4시 22분. 미국 기업 스페이스엑스(X)가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쏘아올린 유인(有人) 우주선 ‘크루 드래곤’이 굉음을 내며 우주로 향했다. 인류 역사상 첫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가 성공한 순간이다. 지금까지는 미국·러시아·중국 정부가 발사한 유인 우주선만 있었다. 길이 8m, 직경 4m인 크루 드래곤은 이날 발사된 지 19시간 만에 450㎞ 상공의 국제우주정거장(ISS) 도킹에도 성공했다.
크루 드래곤에 탑승한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 더글러스 헐리(53)와 로버트 벤켄(49)은 ISS 도착 후 안에 있던 우주인 3명과 반갑게 인사했다. 전 세계가 NASA의 온라인 중계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는 전기자동차 제조사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2002년 설립한 기업이다. 이후 머스크는 18년간 유인 우주선 개발을 독려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하면서 우주 개척을 꿈꿔왔다. 2016년에는 "2024년 승객 100명을 태운 우주선으로 화성 관광 사업을 시작하고, 50년 안에 100만 명을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지난달 31일 미국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쏘아올린 첫 민간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곤’. [UPI=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스페이스X는 우주선을 나르는 로켓의 발사에서 화재 사고를 겪는 등 세 번의 실패 후 2008년 비로소 성공했다. 2015년 로켓이 엔진 가동 시험에서 또 한 차례 폭발하는 등 최근까지도 어려움을 겪었다. 머스크는 "나와 스페이스X 구성원 모두의 꿈이 실현된 것"이라며 "2002년 설립 당시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민간인도 돈을 내면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까. 민간 우주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 간 경쟁에서 비롯돼 수십 년을 이어온 국가 주도의 우주 개척 방식이 민간 주도로 바뀌고 있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우주산업이 국가 위상 제고나 군사·안보 강화와 같은 과거 목표에서 관광 등 상업용 시장 개척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면서 "민간 자본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17년 3240억 달러였던 민간 중심(상업용)의 세계 우주산업 규모는 2040년 1조1000억 달러(약 134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제프 베조스
이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민간 우주산업 투자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미국 아마존의 자회사 블루오리진은 자금·기술력을 갖춰 스페이스X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꼽힌다. 지난해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공식석상에서 직접 달 착륙 우주선 ‘블루문’의 실물 모형을 공개하면서 기대를 모았다.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X와 함께 NASA의 2024년 달 착륙 시스템 개발 사업 협력사로 가세했다. 다른 미국 기업 로켓랩은 처음으로 3차원(3D) 프린팅 기술로 엔진을 만들어 로켓에 탑재해 관심을 모았다. 로켓랩은 2018년 로켓으로 상업용 소형 위성 6대를 지구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리처드 브랜슨
#영국에서는 버진그룹 산하 버진갤럭틱이 적극적이다. 머스크 못잖은 괴짜로 유명한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우주 관광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고도 80㎞ 이상 지점까지 올라가 일반 관광객이 몇 분 동안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고 우주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 우주선을 개발 중이다. 지난해 우주비행사 두 명을 태운 우주선이 82.7㎞ 상공까지 나는 데 성공했다.
중국과 일본 기업들도 분주하다. 중국은 민영 기업 싱지룽야오(星際榮耀)가 지난해 첫 민간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일본 스타트업 악셀스페이스는 소형 위성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관측한 데이터를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2022년까지 총 50기의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이처럼 꼭 관광업이 아니더라도 장래가 촉망되는 우주산업 분야는 적잖다.
민간인의 우주여행이 가능하려면 관건은 비용 절감이다. 미국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우주산업을 대폭 축소, 2011년을 끝으로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 기업으로서도 우주선 발사와 운영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 사업성이 떨어질수록 투자할 이유를 잃는다. 스페이스X 등 기업들이 ‘재사용’ 로켓 개발에 주력하는 이유다.
재사용 로켓은 지구에서 위성이나 우주선 등을 실어 발사된 다음, 다시 쓸 수 있는 상태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춘 로켓이다. 그만큼 비용을 더 아낄 수 있다. AP통신은 스페이스X의 ISS 도킹 직후 "앞으로 우주를 덜 비싸게, 더 자주 여행할 수 있도록 개발한 재사용 로켓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됐다"고 보도했다.
#재사용 로켓을 쓴다 해도 일반인 대부분에게 우주여행이 당장은 ‘그림의 떡’일 공산이 크다. 외신에 따르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스페이스X의 우주여행 상품 가격은 1인당 하루 최소 수십만 달러로 예상된다. 블루오리진과 버진갤럭틱의 상품 가격도 1인당 수십 분에 20만~30만 달러(약 2억4000만~3억6000만원) 정도다.
NASA가 지난해 ISS를 민간에 개방하기로 하면서 예측한 민간 유인 우주선의 예상 왕복 비용은 5800만 달러(약 705억원)다. ISS에 며칠 묵는다고 가정하면 여행비는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전문 기술을 익힌 우주인 극소수만 가능했던 우주로의 접근 기회가 열린다는 데 의의가 있다.
주광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사는 "ISS의 민간 이전이 2024년 무렵부터로 계획돼 상업용 우주 개척이 계속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한국도 급성장하는 민간 우주산업에 발을 내디딜 기회를 엿봐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 우주산업 수요 부족…300여 기업 중 절반 이상 연 매출 10억 이하「 미국 기업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선 발사가 성공하면서 세계 민간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후발주자 한국은 갈 길이 멀다. 미미한 규모로 형성된 시장에서 정부 관심까지 부족해 아직 주목할 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기업인 등에게 민간 우주산업 ‘뉴 스페이스’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뭔지 물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48.1%의 응답자는 수요 부족을 들었다. 관련 기술이나 제품·부품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가 부족하고, 위성 등은 수입산 부품 의존도가 높다보니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우주산업에 관여하는 국내 전체 기업 약 300곳 중 절반 이상은 연매출 10억원이 안 되는 실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케이티샛·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등 대기업과 스타트업 수 곳이 분전 중이지만 우선 수요 부족 문제부터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답자들은 이어 ▶고급 인력 부족(15.9%) ▶정부 관심·지원 부족(14.4%) ▶자금 조달 어려움(7.2%)을 꼽았다. 기술·경쟁력이 부족해서라는 응답자는 3.8%뿐이었다.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우주산업에 투자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국가 자본이 투입돼 공기업 성격이 강하다. 민간 특유의 역동성 있는 사업 추진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정부는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4월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사업’을 신설하고 우주산업을 위한 부품 국산화율 제고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2115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2030년 97% 이상의 부품 국산화율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과기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개발 중인 인공위성의 부품 국산화율은 60%대에 불과하며, 수년간 정체된 상태다.
2012년 발사된 다목적 실용위성 3호의 국산화율이 64%였다. 지금처럼 핵심 부품을 계속 수입할 경우 사업비 증가와 사업기간 연장 등 우주산업 육성에 제한 요소가 생겨 부품 국산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최기영 과기부 장관은 "일본의 (주요 제조업 부품) 수출 규제 사례로 보듯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부품의 자체 개발 능력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민간 참여율을 높이려면 인적 인프라 뒷받침도 중요하다"며 "차제에 전국적으로 태부족한 우주산업 분야 고급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 ■ 재사용 로켓「 지구에서 발사된 다음 다시 쓸 수 있는 상태로 복귀 가능한 로켓. 유인 우주선을 우주로 보내면서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민간 우주산업 성장을 이끌 촉매제로 평가된다.
」
이창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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