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질타하더니…아베, 오염수 120만t ‘내로남불’ 방류?
입력 2020-08-01 00:02:02
수정 2020-08-01 01:09:28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30일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직후부터 현재까지 현장을 방문하며 이 지역 방사성 오염과 오염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위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내고 왜 이런 사고가 벌어졌는지, 대안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하게 다뤘다.
1993년 당시 일본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러시아가 "저장 장소가 가득찼다"는 이유로 방사성 폐기물을 일본 근해에 버리는 데 대해 강력하게 규탄했다. 심지어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양자회담을 열고 더 이상 방사성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지 않겠다는 합의서에 서명하게 했다. 이때 호소카와는 방사성 물질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전 지구적으로 매우 심각한 우려(a grave concern)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9년간 냉각수 쏟아 붓고 지하수 유입
이 같은 정상 간의 합의에도 러시아 해군이 몰래 바다에 방사성 물질을 버리는 장면을 포착한 그린피스는 이를 촬영해 폭로했고, 일본 외무성은 주일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현재 아베 정권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은 1993년 러시아의 행위와 꼭 닮아있다. 일본이 가해국으로 바뀌었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아베 정권의 변명은 27년 전 러시아가 했던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다. "2022년까지 저장 부지가 꽉 찬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올해 안에 오염수 처리 계획을 서둘러 확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아 내린 후쿠시마 원자로 1~3호기에는 사고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날마다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붓고 있다. 그냥 두면 녹아내린 핵연료의 온도가 치솟아 또 다시 사고 당시처럼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나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원자로에 쏟아부은 냉각수와 매일 유입되는 지하수가 고스란히 120만t의 방사성 오염수로 쌓여있다. 오염수 안에는 방사성 물질 중 물에 쉽게 녹는 성질을 지닌 세슘·스트론튬·삼중수소 등이 용해돼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오염수에 녹아있는 세슘·스트론튬·삼중수소 등은 유입된 지하수를 타고 흘러나간다. 지하수 유입을 통제한다고 바닷물을 막는 벽을 만들었지만, 물이 사람 말을 듣는 것도 아니고 한 곳에 정지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성공할 리 만무하다. 오염수는 계속 흘러나왔다. 2014년에 벽과 제방 사이에 물길을 설치해 바다로 흘러드는 지하수가 물길을 따라 흐르게 했다. 흘러나온 오염수를 퍼올려 처리 과정을 거친 후 바다로 방출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누적되는 지하수 양이 늘어났고 2015년부터 벽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동토벽을 세워도 유입되는 지하수의 양은 줄지 않았다. 아베 정권은 오염수에 녹아있는 삼중수소만 처리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62종의 방사성 핵종이 녹아 있어 ‘방사성 칵테일’이라고 불릴 법한 오염수에 들어 있는 세슘·스트론튬 등은 그냥 바다로 흘려보내도 된다는 것인가?
오랜 기간 국제 환경 이슈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온 던컨 커리는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한국 관할 수역을 포함한 해양 환경에 직접적 위협을 가하게 되며, 이 같은 행위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 같은 국제 환경법에 위반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국제 방사선 방호원칙을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제 방사선 방호원칙에 따르면, 환경 내에 방사능을 증가시키는 결정은 반드시 정당성을 갖춰야 하며, 실행 가능한 대안(이 경우 장기 저장)이 있다면 그 결정은 정당화될 수 없다. 120만t의 고준위 오염수를 환경으로 배출하지 않아도 될 분명한 대안이 존재한다. 도쿄전력도 지난 수년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2019년 9월 27일에서야 정부 오염수 소위원회에 제출한 문서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 부지의 북쪽 및 남쪽 끝 구역에 추가적인 오염수 저장 탱크 건설이 가능함을 시인했다. 일본 정부의 방류 결정이 정당화돼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다. 방류 대신 실행 가능한 대안이 명백히 존재한다."
아베 정권이 태평양에 방류하려는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와 인간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불확실하고 장기적인 위험을 한국과 주변국들, 더 나아가 태평양을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감당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일본 시민사회와 지자체는 1993년 러시아 고준위 방사성 물질의 해양 방류를 반대했던 것처럼 아베 정권의 이번 방류 계획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일본 시민사회와 지자체들도 강력 반대
후쿠시마현의 59개 시정촌 의회 중 21곳이 오염수 방류 반대 결의문을 채택했고, 전국어업협동조합과 후쿠시마 어업조합 역시 비슷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대만 시민사회도 일본대만교류협회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한국 언론이 2019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이에 대한 그린피스의 반대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유럽 언론들도 한국의 오염수 방류 반대 움직임과 후쿠시마 오염수 현황을 앞다퉈 보도했다. 방류 계획 추진이 부담스러워진 아베 정권은 오염수 처리 의견의 공모 마감일을 7월 31일까지로 총 3차례 연기했었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달라진 한국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할 때다. 한국 정부는 신속하게 국제법적인 선제 조치에 임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일본 정부는 올해 안에 오염수 방류를 결정할 것이고, 자국의 논리대로 집행을 강행할 것이다. 일본이 러시아 정부의 방사성 폐기물 투기를 막았던 것처럼, 한국도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아베 정권이 스스로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길 바란다.
■ 삼중수소 치명적 물질…일본 정부 ‘문제 없다’ 진실 왜곡「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삼중수소는 굉장히 위험한 대상이다. 눈으로 보거나 냄새를 맡을 수 없지만, 세포 및 동물 연구, 역학 보고서에서 지적하듯이 삼중수소는 암을 일으키고 돌연변이를 유발하며 태아 기형을 초래하는 치명적 물질이다.
삼중수소에 관해 이야기할 때, 거의 모든 경우 사람들은 우리가 ‘방사성 물’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물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가 방사성 물질인 것이 아니라, 물 분자 자체가 방사성을 띠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체는 대부분(체중의 65%)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인체는 물을 필요로 하고 인체가 삼중수소와 물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원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삼중수소의 이례적인 특성들이 서로 합쳐져 삼중수소를 환경과 인간에 위험한 물질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은 이렇다. 방출된 삼중수소는 기존 환경에서 빠르게 이동한다. 삼중수소 원자는 생물권 및 수권에 있는 다른 수소 원자와 빠른 속도로 치환된다.
즉, 거의 모든 원자력 시설, 강, 하천, 농작물, 시장의 과일이나 채소가 (그리고 물론 인간도) 삼중수소를 함유한 수분에 오염된다. 오염은 농작물이나 인체의 오염치가 방출된 삼중수소의 농도와 평형을 이룰 때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몸은 어떨까? 사람의 체내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삼중수소가 유입될 수 있다. 피부, 오염된 물의 증기 흡입, 오염된 식품 또는 물 섭취 등의 경로다. 체내 흡수는 치환 메커니즘, 대사 반응, 세포 성장 등으로 격렬하게 일어난다. 우리 몸의 원자 가운데 60% 이상이 수소 원자이고, 매일 이들의 약 5%가 대사반응과 세포 증식에 관여한다. 그 결과, 유입된 삼중수소는 체내 단백질·지방·탄수화물에 흡착된다. 여기에는 DNA 같은 핵단백질도 포함된다. 이것을 유기결합삼중수소(OBT)라고 한다. 유기결합삼중수소는 여러 종류의 형태로 우리 몸 안에 수년간 머물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러한 위험에도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가 약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성물질로 자연계에 폭넓게 존재하며 체내 들어와도 배설돼 자연계를 순환한다며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분명하다. 일본 정부의 삼중수소에 대한 건강 위험 평가는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사무소 및 홍콩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2017~201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 소재 그린피스 인터내셔널(본사)에서 석유 관련 선임 전략가로도 활동했다. 한국이 2050년 탄소순배출 제로와 재생가능에너지로 100% 전환 등 기후위기 분야에서도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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