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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유전자 가위, DNA, 생명과학,

FERRIMAN 2021. 6. 15. 19:29

[김진수의 미래를 묻다] 유전자가위 든 인간, 진화의 설계자가 되다

입력 2021-06-14 00:38:00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역사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수만 년 동안 인류는 새로운 기술과 도구를 개발하고 활용해 미래를 개척해 왔다. 예를 들어 석기·청동기·철기 시대는 무기와 수렵채집, 농업의 도구를 기준으로 선사(先史) 시대를 구분한 것이다. 보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산업혁명을 촉발한 증기기관과 기차·철도의 발명과 정보화 시대를 초래한 컴퓨터와 인터넷의 개발을 들 수 있다. 이들 도구가 개발되기 전과 후의 인류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혁신적인 도구와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미래를 창조한 것이다. 

21세기에는 생명과학의 도구와 기술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조짐은 이미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서부터 시작됐다. 이중나선 DNA 구조가 규명되어 분자생물학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을 계기로 물리학·화학의 시대를 넘어 생명과학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에도 널리 활용되는 PCR, 항체는 물론이고 제한효소의 발견과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개발 등이 지난 20세기 생명과학 시대의 대표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생명과학 분야에서 놀라운 발견과 발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유전자가위의 개발은 인류 역사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수천만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인 인간이 이제 진화의 설계자가 된 것이다. 유전자가위는 살아있는 세포 내의 DNA를 잘라 염기서열을 교정하는 생물학적 도구를 의미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징크핑거 핵산분해효소, 탈렌, 크리스퍼 등 다양한 유전자가위가 개발되어 생명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와 생명공학·분자의학의 도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세균에서 유래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작동 원리를 규명한 제니퍼 다우드나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막스플랑크 연구소 단장은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기존 유전자가위와는 달리 DNA를 자르지 않고 염기서열을 교정하는 변형된 유전자가위들이 국내외에서 개발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년 넘게 유전자가위를 개발해온 연구자로서, 유전자가위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유전자가위로 만들어질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10문10답으로 풀어본다. 

1. 유전자가위와 제한효소의 차이점은. 

유전자가위 원리

1970년대에 발견돼 유전공학의 도구로 널리 쓰여온 제한효소는 염기쌍 4개 내지는 6개를 인식해 자르는 미생물 유래 효소로서, 시험관에서 DNA를 잘라붙이는 유전자재조합 기술의 도구로 활용된다. 2000년대 이후 개발된 유전자가위는 염기쌍 18개 이상을 인식해 자를 수 있도록 고안된 인공적 제한효소다. 세포 내의 특정 유전자 염기서열만을 인식해 잘라 정교하게 교정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기존 제한효소는 너무 잘게 유전자를 자르기 때문에 세포 내 유전자 교정에는 사용될 수 없다. 

2. 유전자가위는 어디에 쓰일까. 

인간세포를 포함한 모든 동식물과 미생물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교정하고 변이를 일으키는데 사용된다. 유전학자들은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파괴하거나 변이를 일으킨 후, 그 결과를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한다. 의생명과학자들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고치거나 제거해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 

3. 유전자가위로 만병통치가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소분자 약제, 항체 등 기존 치료제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들이 더 많다. 

4. 어떤 질병에 대한 치료가 가능한가. 

유전질환·암·대사질환 등 다양한 난치병에 대한 유전자가위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향후에는 질병이 아닌 미용 등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탈모의 원인 유전자가 밝혀지면 유전자가위로 대머리 치료를 할 수도 있다. 

5. 유전자가위를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유전자가위는 세포막을 통과하지 못하는 거대 분자이기 때문에 환자 세포 안으로 전달시키는 것이 어렵다. 조혈모세포·면역세포 등 혈액을 통해 쉽게 취할 수 있는 세포들은 체외에서 전기충격을 통해 유전자가위를 전달한 후 다시 세포를 환자에 주입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다른 세포들에는 직접 유전자가위를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최근 바이러스 전달체, 나노입자 등을 이용한 유전자가위 전달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6. 질병 치료를 위해 환자의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전부 교정해야 하는가.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실명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망막세포 일부만 교정해도 충분하다. 

7. 유전자가위가 원치 않는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나. 

목표로 하는 표적 염기서열 이외에 다른 곳에서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정확히 측정하고 제어하는 방법들이 개발되어 임상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8. 배아(胚芽)와 태아에도 적용할 수 있나.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이후 초기단계인 배아에 적용하는 것이 더 쉽고 효율적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배아를 만든 후 유전자가위를 주입하면 100% 모든 세포에서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다. 다만 인공수정 중 여러 개의 배아가 만들어지고 산모에 이식되지 않는 배아는 결국 파괴되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종교인들과 학자들이 있다. 

국내 생명윤리법은 임상은 물론이고 연구 목적으로도 인간 배아를 만들어 실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적 추세를 보면, 배아 연구는 허용하되 유전자가 교정된 배아를 산모에 이식하는 임상은 당분간 금지 또는 유보하자는 입장이다. 이론적으로는 배아가 아닌 태아의 유전자 교정도 가능하고 실제 동물 실험에서 그 가능성이 입증되었다. 발달 과정 초기에 질환을 초래하는 유전병의 경우 태어난 다음에는 이미 늦기 때문에, 배아와 태아에서 유전자 교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다만 국내 생명윤리법은 배아는 물론이고 태아에 대한 유전자치료 역시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최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변형한 베이스 에디터, 프라임 에디터 등이 개발되었다. 

9. 그렇다면 기존 유전자가위는 쓸모없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유전자가위마다 장단점이 있어서 이전에 개발된 것들도 여전히 널리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각각 1세대, 2세대 유전자가위로 불리는 징크핑거 유전자가위, 탈렌도 생명과학 연구와 임상시험에 여전히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생명과학자들은 유전자 교정을 위한 도구상자를 채워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도구가 개발되면 이전에는 어려웠던 방식의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게 되어 요긴하기 때문에 새로운 유전자가위가 계속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드라이버가 새로 개발되었다고 해서 기존 도구상자에서 가위나 망치·스패너를 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10. 인간이 아닌 다른 동식물에 유전자가위를 활용하는 경우 혜택과 문제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우리 주변 모든 동식물의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병충해에 강한 가축, 농작물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외 연구진에 의해 건강에 좋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진 대두, 독성 성분이 원천 제거된 감자 등이 이미 개발되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동식물이 GMO(유전자변형생물)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미국·일본·남미 등지에서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외부 유전자 도입 없이 농작물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경우에는 기존 육종법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품종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GMO 규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EU 법원은 여전히 GMO 규제 대상임을 밝혔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합리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21세기 들어 가장 혁신적인 생명과학 도구로 평가받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동참할지, 아니면 잠재적인 위험을 두려워해 각종 법률과 규제로 과도하게 묶어둘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다만 선사시대 때 철기로 만든 무기와 도구는 위험하고 비윤리적이니 석기와 청동기만 사용하자는 부족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 ◆김진수「 유전자가위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2018년 ‘동아시아 스타 과학자 10인’중 한 명으로 꼽았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명공학기업 툴젠의 창업자이며,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을 맡고 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