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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선, 공약, 선거, 선거공약,

FERRIMAN 2021. 10. 1. 12:13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경호의 시선]

입력 2021-09-30 19:00:00

 

최근 증권사 대표와 대선 얘기를 나눴다. 자본시장은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후보 이름을 거론하는 대신 이렇게 답했다. "제발 진영논리에 빠져 편 가르기 하지 않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 분이 됐으면 해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취임사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자기 사람 위주의 답답한 인사를 거듭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겐 반면교사가 됐으리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데일리안 창간 17주년 '2021 경제산업비전포럼'에서 대선 경제비전 발표를 하고 있다. 2021.9.30 국회사진기자단

 
내년 대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여야 유력후보들이 잇따라 공약을 내고 있지만 대장동 의혹 등 활화산이 폭발 중이어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다. 아무리 후보 호감도가 떨어지는 선거라지만 인물 됨됨이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그래도 내세우는 공약을 훑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여야 후보가 쏟아내는 다양한 공약의 홍수 속에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제 3지대 후보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작은 목소리’도 참고할 만하다. "분열된 집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링컨의 말을 인용하며 진영논리를 넘어 미래의 발목을 잡는 금기를 깨자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대한민국을 ‘기회공화국’으로 만들자는 게 그의 큰 그림이다. ‘더 많은 기회’와 ‘더 고른 기회’, 튼튼한 ‘기회복지안전망’이 골격이다. 대선 출사표 형식으로 발간한  『대한민국 금기 깨기』에 나오는 주목할 만한 정책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다른 후보들이 말하지 않거나 덜 강조하는 부분이 눈에 띄어서다. 장하준 교수의 책 제목을 빌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고 불러본다. 

1. 국가 과잉, 격차 과잉, 불신 과잉을 초래하는 승자독식구조를 깨자. 최소한의 소득, 주거, 교육을 보장하는 ‘기회복지안전망’을 만들자.   

2. 시장과 경제는 국가 개입을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국가의 역할은 확대하자. 국가는 가부장적 후견주의를 내려놓고, 코치가 아닌 심판이 돼야 한다.   

3. 혁신 대기업을 늘리자. 반(反)기업정책은 무조건 반(反)시장적이라는 금기도, 친(親)기업정책은 무조건 친(親)시장적이라는 금기도 깨자. 대기업의 편법승계,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행위 처벌은 시장을 위한 것이다. 기업을 직접 지원하고 과하게 보호하면 한계기업 퇴출을 막고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반시장적이다. 중기업 지원은 일몰제 방식으로 하자.   

4. 기업가를 위축시키는 과잉처벌 조항은 재검토하자. 기업가에 특혜를 줘서도 안 되지만 직원의 업무상 실수나 행정규제 위반에 경영자를 인신구속하는 과잉처벌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너무 모호하고 적용범위가 넓어 새로운 시각과 법률 정리가 필요하다.   

5. 규제를 만드는 중앙부처 공무원과 조직은 대폭 줄여야 한다. 사람과 조직이 있으면 규제는 안 없어진다. 유능한 중앙부처 공무원을 지역과 일선 현장으로 내려 보내 규제를 없애는 인력으로 활용하자. 규제와 관련 예산을 없앤 실적을 인사 평가지표로 삼자.   

6. 부총리급 규제개혁부를 신설해 규제 개혁의 실질적 컨트롤타워로 만들자. 규제개혁부 공무원은 기존 부처에서 파견 받지도, 순환보직도 하지 말자. 아예 돌아갈 ‘친정’을 없애자는 취지다.   

7. 공공기관 일몰제를 도입하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공공기관이 가장 많다. 대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듯 정부도 공공기관에 일감을 몰아준다. 설립 목적을 달성했거나 존재가치가 사라진 공공기관은 기능을 줄이거나 일몰제를 적용해 일정기간 후 없앤다.   

8. 순환보직 위주의 공무원 인사시스템을 바꾸자. 관료 트랙을 관리형과 전문형으로 나눈다. 정원의 20%이내 관리형은 조정·정무 활동을 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주되, 정년 등 신분 보장은 하지 않는다. 전문형은 특정분야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전문성을 쌓게 하고 정년과 신분보장을 해준다.   

9. '관(官)피아'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과 지방에 분야별 싱크탱크를 만들어 퇴직 전문관료를 활용하자. 퇴직 후 산하기관이나 업무 관련 기업에 가지 말고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연금이 나오니 적은 보상으로도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10. 정책에 참여한 담당자를 공개하는 정책·통계실명제를 도입하자.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정보를 독점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문제다. 각종 보고서와 회의자료 등 정책과 통계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11. 좋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법도 고민하자.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화해야 한다는 금기를 깨자. 비정규직이 필요한 업무도 있고, 일과 여가를 병행하는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12. 중소기업 지원의 틀과 방식은 생태계 조성과 간접지원으로 바꾸자. 중소·벤처기업을 세계시장과 연결하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인 ‘종합상사’ 설립은 어떤가.   

13. 아직 충족되지 않은 ‘욕구’ 관련 산업을 공략하자. 앞으로 건강, 문화, 환경 욕구가 커질 것이다. 생명과학, 한류·문화콘텐트, 그린경제를 키우자. 


14. 의·약대 정원을 늘리고 정원 증원분이 의과학 분야에 진출하도록 유인체계를 만들자. 의·약대 졸업생 중 3%만이 의과학 연구와 창업을 하는 지금 구조를 확 바꾸자.   

15. 한국형 대학도시를 만들고 그곳의 대학엔 성적 이외의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하는 대학입시할당제를 시범 도입한다. 선진국은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고 질 높은 교육과 연구 덕분에 기업이 들어온다. 지방 국립대를 살리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16. 교육부 통제를 받지 않는 대학을 만들자. 기업이 만들 수도 있고, 학교법인이 아닌 비영리법인도 대학을 만들 수 있게 허용하자. 답답한 교육시장에 ‘메기’를 풀자. 

17. 대학교육 지원 방식은 대학이 아니라 학생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하니 한계기업이 연명하는 것처럼 지금 구조가 안 바뀐다. 학생은 4~5년간 볼모로 잡히고 학과나 교원 조정은 안한다. 학생의 선택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18. 수도권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공공투자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3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 수도권 광역교통정책, SKY(서울대·고대·연대)를 포함한 수도권 대학에 대한 투자는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한다.   

19. 선출직 정치인의 특권을 배제하고 기득권을 없앤다. 국회의원 권한과 혜택을 대폭 줄인다. 보수는 중위소득 기준 1.5~2배와 같이 상한을 정하고 보좌관 수도 줄인다.   

20. 중장기적으로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 재정지출의 구조조정, 조세감면 축소로는 한계가 있다. 복지를 확충하고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데엔 돈이 필요하다.   

21. 대선 후보들의 공통된 경제공약만큼은 같이 추진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의 국정과제를 비교하면 핵심이슈 25가지가 되풀이된다고 한다. 표현이나 방법, 우선순위는 달라도 국정과제의 80~90%는 내용상 동일하다는 얘기다. 여·야·정 공통공약 추진위원회를 상설화해 공통공약을 함께 추진하자.   

22. 권력기관의 장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권력기관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검찰·경찰·공정위·금융위 등이 고발·제소한 사건이 1심에서 패소하면 무조건 항소하는 관행은 지양해야 한다. 3심 제도는 기본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권력기관의 권한행사 보호가 목적이 아니다.   

23. 시민참여를 활성화하는 ‘미래입법’을 해보자. 지금 법을 개정하되 발효시기를 5년이나 10년 후로 못 박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개인과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미래를 보고 머리를 맞댈 수 있지 않을까.   

야당 후보 사이에서 공약 베끼기 논쟁이 벌어졌던데, 좀 크게 볼 필요가 있다. 공약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해져 작은 후보의 좋은 공약이 유력 후보의 빼어난 안목 덕분에 살아난다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