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할머니 제삿날

FERRIMAN 2007. 12. 25. 11:36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 제삿날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떠올릴 만한 추억거리도

내 자식에게 전할 말도 없습니다.

나름 정성을 쏟는다고 하나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 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이번 제사는 지난 10월에 엄마의 병환문제로 동생과 심한 언쟁을 벌린 뒤라서 찜찜했습니다.

언쟁후 한번도 통화 안했거던요.

평상시 라면 일주에 한번이상은 안부전화 나누고 제삿날 다가오면

"잊지 않고 있냐? 올수 있냐? 몇시쯤 도착하냐?" 하고,

"애들도 올수 있냐? " 히기도 하고 그랬지요.

싸운 뒤라 혹시 안오면 어쩌나 싶고, 무슨 표정 짓나, 무슨 말부터 하나,

자꾸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가 우리집에 오지말란 말 안했어니 안오기야 하겠어....." 생각타가

"내가 오지말란 말 했어도 피를 나눈 형제라면 용서해 달라면서 와야지...."하고 생각타가

"진짜 안오면 어쩌지....."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땜에 받은 충격으로 망막출혈이 더 심해 질줄 알았는데 다행히 괜찮았다...." 이말도 하고싶고,

"너가 손바닥으로 두번 내려친 차는 고속도로에서 사고나서 폐차되었다. 속 시원하냐?" 이말도 하고싶고,

"하지만 기적처럼 몸 크게 다치진 않았다. 너무 맘 아파하지마라.." 이말도 하고싶고,

"장남과 차남은 생각이 다른거야.. 남자가 여자를 영원히 이해하기 힘들 듯, 여자가 남자를 이해 못하듯, 차남이 장남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한거다. 내가 이민가면 서열상 니가 장남해야 하는데 장남 한번 해볼래?"

"엄마에게 효도하고 싶으면 너 형과 형수에게 잘해... 그러면 엄마에게 저절로 효도하는거다." 이말도 하고싶었습니다.

 

그날 제사날,

여느때나 마찬가지 그 시간에, 여느때 처럼 .....

둘째네는 손수 준비해 온  떡과 김치를, 셋째네는 준비해 온 색깔도 고운 과일들을 정성껏 다듬고,

넷째네는 멀어서 참석 못하는 대신 피곤한 퇴근길에 어시장에 들러 싱싱한 생선 골라서  택배로 보내주고,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없이 혼자서 하루종일 다듬고,깎고,�고, 무치고, 찌고, 튀기고, 끓여서

만든 내 안사람, 맏며느리가 준비한 음식과,음식 속에 담긴  정성으로 제사상을 꽉 채웠습니다.

머리 속에 있던 그 많던 원망들이 동생들과 같이 있는 시간 속에서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둘째의 무게 실린 바리톤 목소리로 축문을 읽었습니다.

-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조부모님의 기일을 맞이 하오니 그 감회가 더 하옵나이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준비하여 올리오니 부디 강림하시와 흠향하시옵소서  -

 

교회 다니는 제수는 앉아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서둘러 퇴근한 내 딸은 숨을 몰아쉬면서,

때맞추어 휴가 나온 해군 쫄병 조카놈은 바닥에 무릅 부딪치는 소리 날 만큼 열심히 절하고,

대학 다니는 조카는 일찍와서 큰어머니 도와드리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 하고...

저멀리서 유학생활하고 있는 조카를 마음에 담고, 신입사원 조카는 상급자 눈치보느라 참석도 못하고...

아쉬움과 맘 뿌듯함을 함께 느끼며 모두 모두 큰절을 올렸습니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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