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른 ‘탁상교육’이 미 제조업 이꼴 만들었다
공학 교육 혁신 몰고온 ‘올린공대’ 밀러 총장 경영학+공학 접목 학생 300명, 교수 37명 MIT 경쟁자로 부상
올린공대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소도시 니덤에 있는 신생 학교다. 2002년 개교해 학생은 300명, 교수는 37명에 불과하다. 이 작은 학교가 공학 교육의 신흥 명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학에 경영학을 접목시킨 ‘기술경영’ 교육을 시도하면서다. 개교 초기에는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에 2중 합격하고도 올린공대를 택한 학생들로 인해 유명해졌다. 학교의 진가는 2006년 첫 졸업생 66명을 배출하면서 재확인됐다. 졸업생들은 IBM·인텔에 취직하거나 옥스퍼드·하버드·스탠퍼드 같은 대학의 공학·경영학·의학·법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마디로 일류 직장이나 학교들이었다. 창업해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학생도 있다.
올린공대 설립 계기는 뜻밖에도 미 제조업의 위기였다. 1990년대 미국 사회는 일본에 뒤처지고 한국·중국에 바싹 쫓기는 미 제조업의 경쟁력과 경제의 앞날을 고민했다. 올린공대는 “공학 교육 혁신이 미국 경제를 살린다”는 신념 아래 설립됐다. 이런 학교의 리처드 밀러 총장을 30일 만났다. 그는 산업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산업기술재단이 주관한 ‘글로벌 기술경영 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미국 제조업의 현주소는.
“중국·한국의 약진으로 미 제조업은 망가졌다. 아시아 국가들은 물건을 더 싸고 좋게 만드는 데 탁월한 실력을 보인다. 우리는 양 대신 질로 승부하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새롭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조업을 할 수밖에 없다. 교육을 새롭게 바꿔야 했다.”
-기술경영이란.
“공학과 경영학의 교류다. 공학 전공자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심어줄 필요가 대두됐다. 기술을 현실에 접목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려면 경영을 알아야 한다. 10여 년 전, 공대생들이 특허나 창업에 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기술경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엔지니어가 경영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이 핵심이다. 공학도는 사람보다 사물에 관심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과 사회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지배한다. 경영진과 소비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엔지니어는 성공할 수 없다. 지금은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소비자는 선택의 여지가 많다.”
-올린공대 교육방식은.
“모든 학생은 경영학 수업은 물론 인문·사회·예술 과목을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이론 대신 실기부터 배운다. 현장에 나가 소비자의 새로운 니즈를 파악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고 발표해야 한다. 제품화에 성공해 창업한 학생도 있다.”
-학교 운영에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단과대학과 학비·테뉴어(종신재직권)가 없다. 커리큘럼과 운영 원칙을 6, 7년마다 바꾸도록 의무화했다. 새로움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학교 안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른다. 총장을 총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 위계질서와 장벽을 없애 소통을 원활히 하려는 뜻이다. 직함을 붙이면 마음껏 의견을 개진하기 힘들어진다.”
-한국에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미국은 더하다. 미국은 고교 졸업생의 5%가 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한다. 한국은 30%대인 것으로 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 기술경영도 같은 맥락이다.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면 기피 현상이 줄지 않을까.”
-미국에는 엔지니어 출신 CEO가 증가 추세인가.
“그렇다. S&P500 주가지수에 편입된 기업의 CEO를 조사해 보니 엔지니어 출신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공학이 왜 중요한가.
“문제를 해결하고 새 상품을 만드는 것은 공학 덕분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훨씬 길어진 요인은 의학이 아니라 깨끗한 물 덕분이다. 공학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가 오래, 잘살 수 있게 된 것은 공학의 힘이다.”
박현영 기자
◇올린공대=정식 명칭은 프랭클린 W 올린 공대. 엔지니어 출신 기업가인 올린은 미 전역의 58개 대학에 78개 건물을 기증했다. 획기적인 교육혁명은 기존 학교에 투자하는 것보다 새 학교를 열어야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올린공대를 세웠다. 경영학으로 유명한 뱁슨대, 인문학의 웨슬리대와 가까워 공동 커리큘럼을 운영한다.문제해결 능력과 창의력, 공학적 지식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21세기형 공학 인재 양성이 목표다. 입학성적은 1600점 만점인 SAT가 1440~1540점으로 최상위 수준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