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그들, 고민 털어놓을 말벗 필요”
CEO 심리 진단하는 ‘마인드프리즘’ 정혜신 대표 스트레스 과소평가 외로움·불안감 키워 성공한 사람일수록 내면의 자기 억압 많아
최고경영자(CEO)들의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는 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정혜신(45) 마인드프리즘 대표. 정신과 전문의인 그는 2004년 이 회사를 창업했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심리 진단 및 분석 전문업체다. 그는 “정신분석학적 심리 진단과 분석 시스템을 통해 직장인들이 조직에서 겪는 마음의 위기를 잘 헤쳐갈 수 있게 돕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CEO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인가.
“역시 사람이다. 전문경영인도 월급쟁이이긴 마찬가지다. 물리적·업무적 원인에 따른 스트레스는 해결 가능하지만 오너나 경쟁자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는 풀기가 쉽지 않다.”
-CEO들은 일반인보다 스트레스에 강한가.
“그보다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아홉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스스로는 둘 정도만 받고 있다고 착각한다. 강한 자기통제력과 인내심은 사회적으로는 큰 장점이다. 하지만 개인에겐 해가 될 수도 있다. 스트레스 민감도가 떨어지면 자기보호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방치할 경우 심각한 신체적 이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조직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 CEO들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사람에겐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 거기엔 명암이 있게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중 ‘그림자’를 보완하고 조절하려 애쓴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은 그만큼 강한 자기억압의 결과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기 기질의 고갱이, 내면의 독특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억압할수록 여기저기로 파편이 튀어 자신과 주변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부작용을 더 키우는 것이 CEO라는 강력한 ‘역할 성격’이다.”
-CEO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인가.
“그렇다. CEO는 인정과 존경의 대상이다. 그만큼 역할 성격도 강하다. 심리학에선 역할 성격이 강하면 개인과 직업적 페르소나(가면) 사이에 지나친 동일시가 일어난다고 본다. 몸과 마음에 CEO라는 페르소나가 강하게 침투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정·친구관계 등 개인영역에서조차 CEO처럼 행동하고 대우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종종 불만과 섭섭함으로 돌아온다. CEO 중엔 가정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들도 간혹 있다. 이런 심리적 갈등을 줄이려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가면을 융통성 있게 쓰고 벗을 수 있어야 한다.”
-심리 분석과 상담을 통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나.
“전문가는 상담자의 심리적 손을 잡고 그가 한 번도 내려가본 적 없는 마음속 심연으로 들어간다. 상담자는 거기서 깊은 깨달음과 함께 문제의 해결책을 찾게 된다. 나의 숨겨진 욕구는 무엇인가,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어디서 왔는가, 나는 왜 그 사람이 이유 없이 싫은가…. 전혀 별개로 보였던 질문들이 한 축으로 꿰어지며 그 모두가 내면의 한 지점에 묶여 있음을 알게 된다.”
-CEO들이 보통 40~60대인데, 이 나이에도 변화가 가능한가.
“전통적 정신분석에선 40대 이후의 치료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상담을 해보니 50대의 CEO도 8, 9회 심도 깊은 정신분석이 끝나면 놀랄 만한 변화를 보이곤 한다. 이들의 내면에 일어난 변화는 작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실제 삶에는 큰 영향을 끼친다. 또 40~50대는 남성의 삶에서 내적 변화가 가장 첨예하게 일어나는 때다. 가슴속엔 심리적 회의와 가치관 혼란이 소용돌이친다. 자연히 정신적 자극을 흡수하는 속도가 빠르고 이를 자기 안에서 확장하는 능력도 좋다. 특히 CEO들은 경제적·사회적 자원이 풍부한 데다 자기통제력도 강해 효과가 크다.”
-자존심 강한 CEO들이 정말로 솔직한 조언자를 원할까.
“그렇다. 문제는 CEO의 역할 성격에 익숙해지면 그런 조언자를 구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을까 하다가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며 지레 포기한다. 또 CEO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조직 내에서 적절한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CEO의 잘잘못을 대놓고 말할 수 있는 구성원은 거의 없다. 이것이 오히려 CEO의 내적 불안감과 외로움을 키운다. 간혹 CEO들이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나리 기자
◇정혜신 박사=1963년생으로 정신과 전문의.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등의 책을 낸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2004년 마인드프리즘을 창업, CEO 등 기업체 임직원을 상대로 심리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