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인간·동물 혼합배아 논란
“결국 반인반수 … 인간 존엄성 말살 행위” “언제부터 생명으로 보느냐의 차이일 뿐”
영국 의회가 논란 많던 ‘혼합(이종, 사람과 동물) 배아 금지’ 법 조항을 부결시키자 국내에서도 일부 생명공학자와 종교계 간 윤리 논란이 재점화됐다.
가톨릭대 이동익(신부) 생명대학원장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생겼다”며 “인간을 철저하게 비인간화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는 행위”라며 영국 의회의 결정을 비난했다. 그는 “영국 뉴캐슬대학 연구진이 지난달 1일 발표한 사람과 소의 혼합 배아는 인간 특성이 99.9%, 동물 특성이 0.1%이고, 사흘간 생존했다”며 “결국 ‘반인반수(半人半獸)’ 아니냐”고 말했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구인회 교수도 “혼합 배아를 통해 인간도 동물도 아닌 ‘키메라’가 만들어진다면 그 생명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겁난다”며 “혼합 배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당뇨병·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 등의 치료용 배아세포를 얻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지난해 11월 일본 교토대학 연구진은 성체 줄기세포의 역분화를 통한 만능(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며 “이런 방식이라면 윤리적 논란 없이 배아줄기세포를 얻어 난치병 치료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인반수의 탄생과 관련한 종교계의 우려를 ‘기우’라고 반박하는 학자도 있다. 제주대 생명공학부 박세필 교수는 “혼합 배아는 원천적으로 반인반수가 불가능한 기술”이며 “황우석 박사가 핵이 제거된 고양이의 난자에 호랑이의 핵을 집어넣어 복제 호랑이를 탄생시키려 했다. 이런 시도가 실패한 것은 이종(異種) 간 체세포 핵이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혼합 배아가 사흘간 생존한 것도 반인반수’라는 일부 종교계의 견해에 대해 박 교수는 “생명을 어디(일부 종교계는 수정란부터, 일부 생명공학계는 수정 뒤 14일부터)에서부터 보느냐에 따른 인식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혼합 배아에 대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박 교수가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에서 연구팀을 이끌며 소의 난자에 핵을 제거한 뒤 그 자리에 사람의 체세포를 넣었다. 이 배아는 배반포기(6∼7일)까지 생존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개정된 생명윤리법에서 혼합(이종) 배아 연구를 금지하고 있다.
◇생명윤리법 개정=지난 1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생명윤리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이종 간 체세포 핵 이식을 금지하는 것이다. 일부 생명과학자들은 우리의 기술이 유럽이나 중국보다 오히려 앞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생명윤리법 개정으로 스스로의 장점을 포기하는 결과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생명윤리법에선 그동안 윤리 논란이 있던 인간 난자의 사용도 다섯 가지로 제한됐다. 시험관 아기를 수정한 뒤 수정이 안 된 난자를 재사용하거나 난소 절제술을 받은 여성의 원시 난자를 꺼내서 이를 성숙시킨 난자만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난자 사용이 엄격해졌다.
박태균 기자
◇배아세포=다세포 동물의 수정란이 세포분열하며 개체로 성장해 가는 초기 단계의 세포를 말한다. 인간과 동물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 세포분열이 시작된다. 사람의 경우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계속하는데 대체로 임신 8주까지는 배아라고 하고, 8주 이후를 태아라 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세포분열을 계속하면 인체의 세포 수는 60조 개에 이른다. 배아세포는 모든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 각국은 배아 발생 초기 배아의 세포 덩어리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질병 치료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는 이미 각 조직으로 분화된 세포에서 얻기 때문에 해당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로만 자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