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석유가 나왔고 사람들이 흔히 썼다는 기록이 있다. “석유(石油)는 고려에 있다. 석암(石巖)으로부터 흘러나오는데, 샘물과 서로 뒤섞여 솟아 나오며, 미끄럽기가 고기 기름과 같다. 그 지방 사람들이 풀에 적셔서 항아리 속에 보관한다. 색이 검어서 자못 옻칠과 같다. 그곳 사람들이 대부분 이것으로 등불을 밝히는데, 아주 밝다. 물과 만나면 더욱 맹렬하게 타며, 먹을 수 없다. 그 연기가 아주 짙어서 그을음을 긁어모아 먹을 만드는데, 광택이 나면서도 옻처럼 검어 송연묵(松烟墨)보다 좋다.” 중국 명(明)나라 박물학자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나오는 서술이다. 하지만 우리 쪽 기록에는 그 같은 내용이 전하는 바 없어 진위는 불분명하다.
조선말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석유를 처음 사용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석유는 바닷속에서 난다고도 하고, 석탄에서 만든다고도 하고, 돌을 삶아서 그 물을 받는다고도 해, 그 설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진년(1880년) 처음 사용됐는데, 그 색깔이 불그스레하고 냄새가 심하나 한 홉이면 열흘 밤을 밝힐 수 있다.” 이후 한일합병 때까지 미국과 러시아산 석유가 조선에서 치열한 판매전을 벌였다고 한다.
미국은 상업유전을 개발하고 석유를 수출한 첫 나라다. 최초의 유전은 185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발견됐다. 문제는 가격경쟁력이었다. 한 해 전 영국에서 석탄을 증류해 등유를 뽑아내는 정제법이 특허를 받아 생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채산을 맞추려면 깊은 땅속을 파고들어가는 경제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코네티컷 석유회사는 파이프를 계속 연결하는 방식의 굴착기를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드디어 1859년 8월 지하 23m에서 석유 지층이 발견됐고 하루 30배럴씩의 석유를 퍼올릴 수 있었다. 1861년 미국은 영국에 등유를 수출해 세계 최초의 석유 수출국이 됐다. 19세기 말에는 산유량의 3분의 1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로 수출했다. 이때의 거래품은 주로 등잔불용 등유였다.
오늘날 석유는 자동차와 항공기, 선박의 연료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화학비료, 살충제, 의약품, 필름, 잉크, 비닐봉지, 아스팔트가 모두 석유화학 제품이다. 현대 문명 전체가 석유를 기초로 지탱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지구상의 석유 부존량은 2040년께면 바닥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최근의 유가 고공행진은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 자체가 석유 고갈에 대한 대책이라는 측면도 있다. 대체 연료와 대체 에너지원을 시급히 개발하는 것만이 장기적인 해결책이다.
조현욱 논설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