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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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1년 전인 1997년,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포브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30년 후 대학 캠퍼스는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다. 현재의 대학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지식의 생산과 전달이 이루어지는 대학이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었는데, 드러커 교수는 왜 이런 폭탄선언을 했을까? 그 대답은 바로 통신기술의 발달과 정보화 사회의 도래에 있었다. 드러커 교수는 앞으로 인터넷 통신과 이를 이용한 원격강좌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질 것을 예언하면서, 지금처럼 대학 캠퍼스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교수들이 교실에서 강의하는 대학 교육의 형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결국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드러커 교수의 주장은 물론 세계의 학자들과 교수들 사이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많은 토론이 벌어졌다. 소위 전통적인 대학의 형태를 변호하는 논자들은 교육에서 스승과 제자의 대면(對面)이 중요함을 주장하며 드러커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들은 동료들과의 사회적 접촉과 이에 따른 인맥 형성이 대학 생활의 중요한 면임을 강조하며 대학 캠퍼스는 앞으로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인터넷 강의의 경제성과 편의성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피터 드러커의 주장에 동조했다. 집에 편히 앉아 자기가 편리한 시간에 세계적 학자들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인터넷 강의가 미래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며, 이러한 e-learning 혹은 가상(virtual) 캠퍼스는 비용도 저렴하고 평생학습의 개념에도 맞기 때문에 앞으로 고등교육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 강의를 판매하고 수강생의 학위도 인증하는 상업적인 기관들이 번성해 결국 전통적인 대학들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떻게 되었나? 전 세계적으로 소위 명문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 피터 드러커의 주장과 달리 이들 대학의 캠퍼스가 없어질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학 교육을 받으려는 인구 비율도 점점 늘어나 유럽의 많은 대학은 과밀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드러커의 주장에 부합되는 경향도 보인다. 인터넷 강의와 강의 자료와 녹화된 모습을 공개하는 소위 개방강의(open courseware)가 점점 널리 퍼지고 있어, 이제 원하면 서울에 앉아서도 미국 MIT대학 교수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89년 개설된 미국의 온라인 피닉스 대학은 1만7000명의 강사를 보유하는 미국 최대의 공인 대학으로 발전했다. 콧대 높은 하버드대와 스탠퍼드 대학도 이제 온라인 강의만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사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듯한 현상은 대학의 양극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위 명문대학은 계속 좋은 학생들을 입학시켜 서로 인맥을 형성하면서 점점 더 부유해지는 반면, 일정 수준에 못 미치는 대학들은 인터넷 대학에 학생들을 빼앗기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미 몇 개의 대학이 문을 닫았고, 어느 교육학자는 미국에서 앞으로 20년 사이에 500여 개의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 강의마저 결국은 소위 몇 개의 명문대학이 독점하리라는 예상이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의 학생들이 영어 소통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면,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하버드의 경영학석사(MBA) 학위와 국내 대학의 MBA 학위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을 택할까? 학비도 하버드 온라인 MBA가 더 저렴하다면?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곧 다가올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은 2008년도 세계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 대학 교육은 경제사회요구 부합도 면에서 55개 조사대상국 중 53위라고 발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학령인구가 줄어 대학의 정원 채우기가 쉽지 않은 마당에, 이처럼 국내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져 외국의 온라인 대학에 학생들이 몰린다면 그 영향은 차마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 파도를 견디기 위해서는 한국 대학의 특성화·다양화만이 살 길이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물리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