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된 기술·노하우 계속 활용” 재고용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중앙일보·닛케이 ‘한·일 고령자 고용’ 조사 일본 기업 95%가 시행 한국은 31% … 점차 늘어
손진호(59)씨는 지난해 말 현대중공업에서 30년간 한솥밥을 먹던 633명의 동료와 함께 울산 현대호텔에서 정년퇴임식을 했다. 그는 정년퇴임 후에도 현대중공업에 출근해 예전에 하던 일을 하고 있다. 같이 퇴직한 동료 250여 명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이들을 촉탁 직원으로 재고용했다. 이 회사 김종욱 인사노무담당 상무는 “퇴직하는 사원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계속 활용하고, 숙련공에 대한 인력난도 더는 등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촉탁직의 근로계약 기간은 1년이다.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계약은 갱신된다. 임금은 퇴직 전의 70%선이다. 손씨는 “재고용된 뒤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지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젊은 층의 근로인력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에 대한 준비를 하는 국내 기업은 많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8월 기업의 주요 근로인력인 25~54세 연령층이 2009년부터 감소하고, 기업 임직원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40세 이상의 종업원 비중은 1993년 28.3%에서 2005년 38.2%로 10%포인트나 늘어났다.
중앙일보와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공동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에 비해 나이 많은 근로자를 활용하거나 이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도록 배려하는 데 인색했다.
◇인건비 부담 덜고 정년 연장=조사대상 한국 기업의 99.5%가 55~60세를 정년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최근 3년 동안 정년을 연장한 기업(16.3%)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주일 노동부 고령자고용과장은 “임금을 줄이는 대신 정년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근로조건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정년을 늘리는 기업은 극소수”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은 98년 개정된 고용안정법에 의해 거의 60세를 정년으로 삼고 있다. 2006년에는 같은 법을 개정해 ▶정년 65세 연장 ▶정년제도 폐지 ▶재고용 등 세 가지 방안 중 한 가지를 의무적으로 택하도록 했다. 이미 정년을 60대까지 연장한 기업이 많아서인지 65세로 연장한 일본의 기업은 조사대상의 2.4%(3개)에 그쳤다. 강익구 대한노인인력개발원 사업개발팀장은 “퇴직금과 같은 인건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한·일 기업들이 정년 연장을 기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고용은 활성화=한국은 기업 세 곳 중 한 곳, 일본은 대부분의 기업이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나라의 기업들은 재고용 제도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재고용된 근로자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한국 기업의 44.2%, 일본기업의 79.4%가 퇴직근로자에 대해 만족(중복응답)한다고 답했다. 두 나라 기업 모두 기술과 노하우를 기업에 전수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고용 제도는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으로 숙련공의 기술을 활용하면서 매년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고용의 유연성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특히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한국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재취업 지원 나선 기업=KT는 2005년 10월 ‘라이프 플랜(Life Plan)’ 제도를 도입했다. 퇴직 후 직원들의 생활 안정을 꾀하기 위해 회사가 임직원들의 경력관리를 지원해 주는 제도다. 퇴직이 가까운 사람에게는 창업을 지원하거나 재취업을 알선해 준다. 재테크 관리 기법까지 강의한다. 온라인 사이트(www.ktlifeplan.com)에서는 퇴직자들의 근황도 알려줘 그들의 경험을 직원들과 공유하도록 했다.
이번 조사에서 퇴직 후 인생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은 26.7%(23개)였다. 일본은 57.6%(72개)로 한국의 두 배나 됐다. 이정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재취업 연계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 데 반해 한국은 거의 없다”며 “노동시장에서의 재취업 시스템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