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선데이] 2008 글로벌 경제위기

FERRIMAN 2008. 7. 1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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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지났다고? 이제 시작인데….”

금융위기 분석의 대가 에드워드 챈슬러

강남규 | 제70호 | 20080712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웬만한 강심장으론 버티기 힘든 때다. 경기침체의 어두운 그림자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우울하다. 신용경색의 재연, 국제 유가 급등, 주가 급락…. 투자자와 비즈니스 리더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까지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희망 섞인 전망이나 일시적 주가 반등도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다.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며 후회를 반복했던 게 지난 1년여의 시간이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독자들을 대신해 중앙SUNDAY가 미 투자자문사인 GM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드워드 챈슬러(사진)를 긴급 인터뷰했다. 금융 버블의 발생과 붕괴를 가장 잘 분석한 인물로 꼽히는 그에게서 세계경제 위기의 현주소와 탈출 전망을 들어봤다. <편집자>
“최악의 순간은 지났다고? 이제 시작으로 보이는데….”

지난 10일 밤 12시 미국 보스턴에 있는 투자자문사 GMO에 전화를 걸었다. 영국 남부 억양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워드 챈슬러였다. 『금융투기의 역사』 『신용경색의 순간?(Crunch Time for Credit?)』 등의 책을 낸 그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버블 분석의 대가로 통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의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6월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중국 증시의 버블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가.
“거품이 꺼지는 긴 여정의 초반부라고 판단한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주가 급락, 신용경색, 베어스턴스 파산이 금융위기 국면이었다면 이젠 실물 경제가 본격 추락하는 단계에 들어선 듯하다. 역사적으로 버블 붕괴는 금융위기로 시작해 실물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패턴이었다. 물론 모든 버블이 그런 것은 아니다. 1987년 블랙 먼데이와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때는 실물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20년대 ‘재즈거품’은 29년 주가폭락(금융위기)과 30년대 중반 실물 경제 추락(대공황)으로 이어졌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고전적인 패턴이라고 보는데 오랜만에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는 말인가.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급등하는 유가가 세계 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공황처럼 극단적으로 악화된다는 뜻은 아니다. 위기를 반복하며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대응하는 노하우를 많이 개발했다. 자산 가격이 추락하고 경제가 둔화하는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증세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는 있다고 본다.”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는 진단도 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와중에서도 미 다우지수는 지난해 10월 1만4000선을 넘어섰다. 거기서 20% 떨어진 지금은 침체에 막 들어선 상태다. 위기의 진원인 미국 집값에는 여전히 거품이 남아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떨어진 만큼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스페인과 아일랜드 집값은 떨어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영국 집값은 이제 막 고개를 숙였다. 중국 집값도 거품인데, 아직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집값 하락으로 금융회사 부실이 급증하고 증시가 요동쳤다. 역사를 돌아보면 거품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이들 나라 집값이 추락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챈슬러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펀드매니저를 거쳐 금융 저술가와 저널리스트로 변신한 뒤 다시 경제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많은 경제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항상 역사적 사실을 밑바탕에 깔고 설명한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희망의 징조가 아닌가.
“요즘 발표되는 건 실물 경제가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전의 과거 수치다. 미래를 봐야 한다. 글로벌 경제가 본격 침체에 빠지면 기업 실적이 빠르게 나빠질 수밖에 없다. 거품 시기에는 미래 실적을 바탕으로 급등하는 주가를 합리화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거품이 꺼지자 과거 실적에 기대 현재 주가가 낮다고 강변한다.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아직 주식을 살 시점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살 만한 주식이나 자산이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위기 순간 투자자의 눈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응시해야 한다. 앞으로 상당 기간 기업 순이익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잣대로 산출된 현재의 주가수익비율(PER)에 현혹돼선 안 된다. 최근 급락한 금융주가 단적인 예다. 집값이 계속 떨어져 추가 부실이 발생함에 따라 순이익은 끝없이 쪼그라들고 있다.”

-버블은 왜 생긴다고 보나.
“모든 버블은 돈을 연료 삼아 부풀어오른다. 여기에 환상(버블을 정당화하는 논리)이 곁들여진다. 2001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닷컴 버블’붕괴에 따른 경기침체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돈을 잔뜩 풀었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자 경제 주체들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이 돈이 세계 곳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미국과 영국·스페인·아일랜드 등에서 집값이 뛰었고, 중국과 인도로도 흘러들어갔다. 특히 중국이 각광을 받았다.”

-중국은 고도성장을 지속하는데도 왜 주가가 폭락하나.
“미국도 세계 최강대국이 되기까지 수많은 위기를 거쳤다. 그때마다 파산한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지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돈이 말라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도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중국이 ‘엄청난 외환 보유액 또는 자본을 보유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론 장담할 수 없다. 20년대 신흥 경제 강국인 미국과 80년대 일본은 모두 막대한 자금을 보유했지만 버블이 꺼지자 실물 경제가 휘청거렸다. 중국이 흔들리면 그 파장이 한국 등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복은 언제나 가능할까.
“금융위기나 침체, 공황 등으로 망한 나라는 없었다. 세계경제가 엄청난 비용을 치르겠지만 결국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회복 시점을 점치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10년 걸렸다. 일본도 버블 붕괴 뒤 10년 넘게 시달렸다. 글로벌 경제가 최근 10년 동안 장기 호황을 누리는 동안 거대한 거품이 발생했다. 이제 반대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과거처럼 중앙은행이나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오판과 실수가 반복되고, 대중의 불만이 고조돼 정권이 바뀌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거품이 해소되는 과정이다.”

-회복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세계 각국의 집값이라고 생각한다. 주택가격이 적정가격이나 그 이하로 떨어져 일정 기간 바닥을 헤매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가 회복의 출발점이다. 투자자는 그 순간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주가가 급락한 것만 보고 섣불리 저점이라고 판단해 매수에 나서면 귀중한 현금을 낭비할 수 있다. 앞으로 현금을 많이 확보한 사람일수록 큰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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