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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멋진 노년시대(2)

FERRIMAN 2008. 7. 25. 09:18
 
  매경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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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이 가장 행복한 '그림 읽어주는 남자'

은행원으로 바빴던 28년 동안 주말마다 화랑ㆍ인사동 순례…그림에 푸~욱 빠졌죠
50세 이전엔 가족 위해 살지만 50세 이후엔 나를 위해 살아…열정쏟을 대상 찾아 기뻐

◆멋진 노년시대를 열자 2부 (3) / 강효주 필립강갤러리 대표◆

출근할 때가 하루 중 가장 즐겁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강효주 필립강갤러리 대표(58)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아침에 출근해 화랑 문을 들어설 때 가장 행복해요.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만나는 시간이니까요. 음악을 조용히 틀어놓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작품들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이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강 대표를 보면 '취미는 제2 직업'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는 현재 명망 있는 미술인이다. 화랑 대표, 미술평론가,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 한국국제아트페어 운영위원 등 그가 맡아 온 미술 관련 직책만도 30여 개에 달한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필립강갤러리는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발표의 장으로,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진정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원래 잘나가던 은행원이었다. 1974년 보람은행에 입사해 강남지역본부장까지 지냈고, 1999년 보람은행과 하나은행이 합병한 후에는 하나은행 강북지역본부장과 강남지역본부장, 법인영업본부장을 역임했다.

은행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외환위기도 순조롭게 극복돼 가고 있던 상황. 은행원으로서 그의 앞길은 탄탄해 보였다. 하지만 2001년, 그는 51세 때 28년 가까운 세월을 몸담아 왔던 직장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평소 미술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탓에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안목, 그리고 서적과 자료를 갖추게 됐는데 이것을 활용해 미술에 대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50세가 되면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51세에 은퇴했으니 계획이 1년 늦어진 셈인데, 나름대로 체면을 챙기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외환위기 직후는 은퇴 시기로 좀 안 어울린다 싶었거든요. 쫓겨난 것처럼 오해 사기는 싫었으니까요. 하하."

은행원에서 미술인으로. 회사를 다니며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전에 종사했던 분야와 이렇다 할 연관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제2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계획된 인생'이었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인생을 세 구간으로 나눠놓고 있었어요. 25년 단위로요. 첫 번째 구간인 태어나서 25세까지는 부모에 의해 길러지고 학교 공부와 군 복무를 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에 거의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야 하는 시기라 할 수 있고, 이후 50세까지는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어느 정도 많아지기는 하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직장이나 사업의 일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50세 이후야말로 자기 나름의 삶을 살면서 내 삶을 내가 '디자인'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강 대표는 세 번째 구간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길고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평균수명은 80세로 늘어났는데, 직장생활을 하는 기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간으로 따져도 직장을 그만둔 이후의 시기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시기보다 훨씬 긴데, 정작 그 시기를 준비하는 사람은 얼마 없어요. 회사만 해도 만일의 일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백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자기 인생에 대한 백업 시스템은 왜 안 갖춥니까."

강 대표는 은퇴 이후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강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유달리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연세대 행정학과) 때부터 전시장을 자주 찾았고, 취직 후에는 본격적으로 다니며 보았다. 서울 시내에서 열리는 전시회란 전시회는 죄다 가볼 정도였다. 주말에는 하루 수십 군데의 화랑과 미술관을 찾아다녔고, 시간을 내기 힘든 평일에는 점심 약속을 직장 가까운 인사동에서 잡고 식사 후 차를 마시는 대신 화랑에 들르기도 했다.

골프채는 잡아보지도 않았다. 전시회를 볼 시간을 뺏기기 싫었기 때문이다. "지점장급 이상 직원 중에서 골프를 안 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는 게 강 대표의 말이다.

이렇게 발로 뛰면서 안목을 쌓다 보니 체계적인 지식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도록과 잡지들을 모으고, 책을 사보기 시작했다. 서점과 청계천 헌책방을 뒤져가며 미술서적을 모조리 구입해서 읽었고, 해외 출장 때 외국 미술 책 사오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월급을 쪼개 마음에 드는 작품도 샀다.

이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엄청난 자료가 쌓였다. 지금까지 그가 모아온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보관실 규모는 갤러리의 몇 배나 된다.

자연스레 미술계 인사들과 교류하는 일이 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취미생활로 쌓아 온 그의 예술적 안목과 탁월한 지식은 그를 미술계의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지인들의 권유로 몇몇 신문과 잡지에 미술평론을 실었고, 그 글이 화제가 되면서 또 다른 원고 청탁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강 대표는 '미술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자연스레 갖게 됐다. 광운대, 단국대 등 교수로 대학 강단에도 섰다. 필립강갤러리는 2004년 문을 열었다.

"은퇴 이후 일은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서 찾는 게 좋습니다. 취미도 좋고요. 단, 뭘 하든지 전문성을 갖추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바둑을 좋아한다고 치면, 적어도 아마 1단이라도 따놓아야 기원을 하더라도 사람이 찾아올 거 아니겠습니까. 당구도 그래요. 아주 잘 쳐야 같이 쳐주고 자장면이라도 얻어 먹지 100정도 쳐서야 당구장 주인 하기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바쁜 직장인들이 취미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 공부를 해 보려 해도 여간한 의지가 있지 않는 이상 짬을 내기 힘들다.

"중요한 건 '열정'입니다. 열정을 쏟을 대상을 찾고, 실제로 그 일에 열정을 쏟는 것. 이만큼 확실한 노후 준비는 없습니다. 직장은 자기 뜻대로 안 되지만 하고 싶어하는 일은 자기가 디자인할 수 있잖아요."

[노현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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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5 04:05: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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