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시론 나노기술의 발전은 최근 들어 나노기술의 윤리 일명 나노윤리(nanoethics)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이것은 응용윤리의 일종인데, 나노기술이 가져 올 인간 삶의 모든 변화들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가령 나노기술의 발전에 따른 경제적인 환경의 변화를 다루는 나노-경제학에서 경제적인 충격들에 관한 보고는 사실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그것이 분배정의와 연루된다면 윤리적인 영역의 문제가 된다. 법의 경우에도 나노기술의 연구 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특허 관련 문제들은 특허법의 새로운 제정과 같은 법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지만, 새로운 특허법이 공정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가 된다.
나노기술이 인체 및 환경에 어떤 영향을 가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고유한 연구 영역에 속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인체 및 환경에 대해 어떤 종류의 실험행위들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분명 윤리적인 문제다. 특히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나노물질의 경우 그것의 독성 혹은 위험성에 관한 문제는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지만, 그와 관련된 검사를 공정하게 수행했는가의 문제나, 나노물질의 안전한 생산과 유통을 위해 공정 과정들이 필요한 규범에 따라 통제를 받았는가의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노윤리는 사실상 나노기술의 발전과 관련한 모든 부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
나노기술의 발전에 따른 ‘나노윤리’
2007년 이래로 미국과 유로를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노윤리의 최근 연구들을 살펴보면, 다음의 다섯 영역에서의 쟁점들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규범과 법의 영역, 재정 및 우선순위 영역, 형평성의 영역, 인체 및 환경과 안전성 영역, 프라이버시 영역 등이 그것들이다. 그렇다면 각 영역에서 어떤 윤리적인 문제들이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규범과 법의 영역에선 현재 신소재에 관한 특허 관련 법이 가령 탄소나노튜브와 같은 나노물질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적용가능한지, 그리고 제조 과정상의 안전 문제와 관련된 기존의 규범들이 나노물질에 그대로 적용됐을 때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인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한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2005년경에 삼성전자는 박테리아도 죽일 수 있는 은 나노입자를 사용한 ‘은나노 세탁기’를 만들었지만, 미국의 환경보호청(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에 의해 은 나노입자가 환경에 미칠 독성을 이유로 농약류로 분류되어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미국으로의 수출이 금지돼 있다. 현재 미국은 기존 법규의 적용을 피해갈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자 이를 수정하거나 대체할 한 새로운 법을 준비 중에 있다. 이는 나노물질의 독성 평가 및 안전성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가 경제 활동 그 자체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환경보호청, 은 나노입자의 독성 지적
두 번째 영역에서는 수많은 연구비가 경쟁적으로 나노기술에 편중 투자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투자가 다른 연구들을 희생시켜도 좋을 만큼 정당한 것인지가 쟁점이 된다. 편중 투자는 과다한 나노연구자들의 배출, 나노 관련 연구소들의 편중 현상, 그리고 과다한 학술지나 세미나 등 나노 중심의 과학자 사회와 문화의 형성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나을 수 있다.
세 번째 형평성의 영역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혹은 후진국) 간의 나노기술 격차와 그에 따른 성과물의 불공정한 분배가 쟁점이 된다. 현재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경우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의 부족, 에너지 자원의 고갈, 에이즈와 같은 질병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의 부족 등으로 매년 수백만에서 수십억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때문에 나노기술이 발달한 선진국보다 나노기술의 개발 성과물이 우선적으로 공급돼야 하는데, 현실은 이러한 분배정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네 번째 영역과 관련해서는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주요 국가들이 몇 년 전부터 특히 새롭게 개발된 나노물질의 독성과 인체 및 환경에 가하는 위해성, 그리고 이런 나노물질의 관리와 관련하여 실험 · 연구하고 제조하는 과정의 안전성 문제 등을 주요한 문제로 거론해 왔다. 과거 석면으로 인한 피해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다.
다섯 번째 영역에서는 최근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의 개발과 함께 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ty Chips) 기술의 발달과 그에 따른 개인 사생활의 통제 및 감시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랩온어칩(lab-on-a-chip, LOC) 기술의 발달로, 칩 위에 유전적 특성 분석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이크로 머시닝 기술을 이용하여 집적시키는 것이 가능해 짐으로써, 유전자 수준에서의 개인 생체정보의 보호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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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언급하였듯이 오늘날 나노기술과 관련한 윤리적인 문제들은 단순히 윤리학자의 학문적 호기심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작게는 나노물질 연구자나 생산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문제에서 크게는 통제 불가능한 재앙으로부터 인간과 환경을 보호하는 데 이르기까지, 개인의 사생활 보호는 물론이거니와 위험으로부터 공공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데까지, 그리고 규범이나 법을 제정하는 데서 경제 발전을 위한 안전한 성장 동력을 구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윤리가 관련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다. 이제 나노윤리는 나노기술의 책임있는 연구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선행조건이 되어 가고 있다.
나노윤리 … 지속가능한 발전 위한 선행조건
이러한 문제의식의 공유 하에 2007년 영국에서는 왕립학회, 투자 자문사인 Insight Investment, 나노기술 산업연합회(NIA) 등이 중심이 돼 ‘책임있는 나노강령 위원회’(Responsible Nano Code Initiative)가 만들어 졌고, 2008년 5월 이 위원회를 통해 ‘책임있는 나노강령’의 골간이 발표됐다. 이보다 조금 앞선 2008년 2월에는 유로 산하에 있는 나노기술 관련 한 위원회가 ‘나노과학과 나노기술에 관한 책임있는 연구를 위한 윤리강령(Code of Conduct for Responsible Nanosciences and Nanotechnologies Research)’을 채택하여, 유로 회원국 내의 모든 대학과 연구소들 그리고 기업들이 이를 수용하도록 권고하였다. 나노 연구 윤리강령과 관련하여 대체로 7가지 원리들이 제시됐다.
첫째, 나노 연구활동은 대중에게 반드시 이해돼야 하고 인간의 기본 권리들을 보장해야 하며 설계, 실행, 보급, 이용의 전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의 행복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행해져야 한다. 둘째, 나노 연구활동은 안전하고 윤리적이어야 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셋째, 나노 연구활동은 환경, 건강, 그리고 안전에 관한 충격적인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도록 예방조치의 원리에 입각하여 수행돼야 한다.
넷째, 나노 연구활동에 대한 관리와 통제는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성, 투명성 그리고 정보 접근의 정당한 권리 인정과 같은 원칙들에 의해 실행돼야 한다. 다섯째, 나노 연구활동은 연구의 진정성과 좋은 실험활동과 같은 최상의 과학적 표준들을 따라야 한다. 여섯째, 나노 연구활동에 대한 관리는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이 가능하도록 최고의 창의성과 기획능력 등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일곱째, 나노 연구자들과 연구단체들은 그들의 작업이 사회, 환경, 인체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들을 설명해야할 의무를 가진다. 아직은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져야 할 윤리강령이지만 그것의 필요성이 현재한다는 면에서 나노기술 연구개발의 세계 7대 투자국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2008년 8월에는 네덜란드 트웬테(Twente) 대학에서 유로의 재정지원을 받은, 박사급 혹은 박사후 나노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노기술 여름윤리학교가 처음으로 열린다. 나노기술의 연구개발은 물론,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나노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전진적인지를 느끼게 된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동역학의 인식론적 구조에 기초한 양자이론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과학으로 생각한다』, 『근대의 끝에서 다시 읽는 문화』, 『인문학으로 과학읽기』 등이 있다. 양자이론 해석과 기술철학에 관심이 많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