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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 60년] 자동차 엔진 개발

FERRIMAN 2008. 8. 14. 09:08
 
  매경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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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 60년] 자동차, 독자엔진 개발 극비진행

`알파 프로젝트` 아시나요

국내 최초 독자개발 ‘알파엔진’
1983년 여름.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정주영 회장의 마음은 다급했다. 전 세계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모두 들어와 있는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면 현대차의 기술력 강화, 특히 독자엔진 개발이 필요했지만 개발 청사진조차 제대로 갖춰놓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이 "회사가 차를 만들어 온 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 어떻게 우리 엔진이 없느냐"며 독자엔진 개발을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 회장이 독자엔진 개발을 밀어붙이자 현대차는 83년 9월 독자엔진 개발을 위한 '엔진개발실'을 만들었다. 엔진개발실을 만든 이후 현대차는 해외 인력을 포함해 대대적인 고급 두뇌 확보에 나섰다. 현재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현순 사장도 당시 엔진개발실 소속이었다. 인력 확보 후 현대차는 독자엔진 개발을 위한 극비 프로젝트 '알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의욕적으로 독자엔진 개발에 나섰지만 당시 알파 프로젝트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독자엔진을 만든다고 했을 때 무모한 계획이라며 취소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많았다.

부품공급을 요청하는 현대차에 외국업체들은 "큰 회사도 하기 힘든 일을 조그만 회사가 어떻게 하느냐, 우리는 큰 회사와 거래하는 물량으로도 빠듯하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는 식으로 핀잔을 줬다.

이런 어려움 속에 현대차는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85년 시제품 1호를 내놨다. 그러나 엔진 내구성 시험 도중 잇따라 엔진이 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깨진 엔진만 20여 대. 현재 가치로 서울 강남 중형아파트 10채가 사라진 셈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여기서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직원들은 숨 한 번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거봐라, 결국 안 되는 것 아니냐, 양산할 수 없는 엔진 아니냐"는 주위 비판이 빗발쳤다. 이후 파손 원인이 냉각계통 이상으로 밝혀졌고 이를 개선한 뒤 새롭게 내놓은 알파엔진은 성능과 내구성 면에서 당시 어떤 엔진보다도 우수했다.

알파 프로젝트를 완료할 때쯤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700명 이상으로 불어난 연구원, 생산ㆍ주조ㆍ소재 기술뿐만 아니라 자료관리 기법까지 몇 단계 향상됐다. 현대차는 또 2004년 9월 독자적으로 개발한 세타엔진 기술을 예전에 현대차에 엔진기술을 전수해줬던 미쓰비시에 수출까지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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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15:41:2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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