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하이브리드 뺨치는 기술들
기름 덜 먹는 게 ‘그린카’ … 하이브리드가 만능 아니다 친환경 디젤, 무단변속기, 수소엔진도 실속 있어
1997년 봄 일본 도요타시 도요타자동차 연구소. 육척 거구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 사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판매통인 그는 연구소 간부들을 모아놓고 “하이브리드카도 혼다에 선수를 빼앗길 거냐”고 호통쳤다. 아마 70, 80년대에 저공해 엔진과 가변밸브 개발 경쟁을 벌일 때 ‘기술의 혼다’에 밀린 아픔을 떠올렸을 것이다. 도요타는 그해 말 세계 첫 양산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를 내놓았다. 혼다보다 반년 빨랐다. 이 제품은 즉각 ‘도요타=친환경’이라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됐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환경이라는 개념에 막 눈을 뜰 때였다.
도요타는 지난해 43만 대의 하이브리드카를 팔았다. 전년 대비 34% 늘어난 실적이긴 하지만 도요타 전체 판매량을 보면 5%에 미치지 못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을 강조했다. 임기 안에 세계 그린카 산업 4위 진입이라는 구체적 목표도 내놓았다. 현대자동차는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전력해 그린카 4위 진입의 초석이 되겠다”고 18일 화답했다. 정몽구 회장 역시 오쿠다 회장이 그랬듯이 하이브리드카 개발을 독려하고 나섰다. 현대차가 내년에 내놓을 LPG 하이브리드(아반떼)는 내수용이다. LPG 엔진을 쓰는 나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출시 예정인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관련 특허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도요타 방식을 피해 개발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카가 세계 자동차업계의 궁극적 화두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친환경·고효율차의 전부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연비를 좋게 하는 것이 그린카(Green car)’라는 것이다. 가령 현대차는 동급 도요타 차보다 무거워 연비가 10∼20% 떨어진다는 평을 듣는다. 단국대 성현찬(녹색조경학) 교수는 “하이브리드카만이 그린카는 아니다. 연비를 좋게 하는 방법 중에 잘할 수 있는 것,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LIG증권의 안수웅 센터장은 “현대차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쫓아가기엔 격차가 꽤 벌어져 있다. 도요타와 대등하거나 일부 우위인 친환경 디젤 쪽으로 차별화하는 것도 생각해 봄 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카는 친환경 이미지에 절대적이다. 친환경 디젤도 일본에 앞서가기 위해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업체들은 친환경디젤에 집중한다. 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푸조의 경우 가솔린 엔진보다 조용하고 배기가스가 적으며 연비는 하이브리드카보다 뛰어난 디젤 개발에 전념한다. 벤츠는 지난해부터 디젤 배기가스 규제가 가장 강한 미국·일본에서 디젤 세단을 판다. 아우디도 내년 초 미국에 디젤차를 내놓는다.
닛산은 연비가 좋은 무단변속기(CVT)를 내년까지 대부분 모델에 달아 평균 연비를 20% 이상 향상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혼다의 경우 소형차는 하이브리드, 중형차는 친환경 디젤이라는 두 갈래 개발 전략을 세웠다.
미쓰비시자동차는 내년 9월 세계 첫 전기차 ‘미에브(MiEV)’를 내놓는다. 한 번 충전하면 160㎞를 달리는 4인승 차로 통근용으로 제격이다. 값은 정부 보조금 덕분에 300만 엔(약 2900만원) 조금 넘는 수준에 맞출 것으로 보인다. 2010년부터는 미국·유럽에 수출한다.
BMW와 마쓰다는 기존 엔진에 수소를 연료로 쓰는 수소엔진차로 차별화했다. 두 회사 모두 2006년부터 수소엔진차를 리스 형태로 정부기관에 팔고 있다. 수소충전소를 확보해야 하는 숙제가 있지만 배기가스 대신 물만 배출한다는 점에서 최상의 친환경차로 꼽힌다.
GM·포드·볼보는 가정용 전기로 충전해 모터 구동으로 100㎞를 달리고, 그 이상 거리는 기존 엔진을 사용해 연비를 높이는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를 실용화해 양산을 눈앞에 뒀다.
김태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