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치킨 게임’ 21개월 만에 끝나나
하이닉스·엘피다 등 감산 선언 … 가격 하락세 진정될 듯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으로 적자 늪에 빠진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감산을 선언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이달 초부터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최고 30% 줄였다. 월 8만 장의 200㎜(8인치) 웨이퍼를 가공해 메모리칩을 만드는 충북 청주 M9 라인 가동을 이달부터 중단했다. M8 라인도 이달부터 생산량을 웨이퍼 기준 월 10만 장에서 7만 장으로 축소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플래시 가격이 너무 많이 떨어져 구형 200㎜ 라인으로는 단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력 제품인 8기가비트(Gb) 멀티레벨셀(MLC) 제품 가격이 현재 1.8달러 수준이다. 1년 만에 80%나 떨어졌고, 지난해 말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하이닉스는 플래시 메모리 시장점유율이 15% 안팎으로 삼성전자·도시바에 이어 3위다.
D램 부문에서도 감산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 3위 회사인 일본 엘피다는 이달 중순부터 생산량을 10% 줄인다고 9일 밝혔다. 시장 6위인 대만의 파워칩도 생산량을 15%까지 축소키로 했다. 미국의 유일한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인 마이크론은 올 3월 아이다호에 300㎜ 라인을 건설한다고 밝혔으나,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착공 시기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올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보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해 말 1500명의 직원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D램 분야 세계 2위인 하이닉스도 이달 말까지 미국 오리건주 유진공장의 가동을 중단한다. 이미 1100명의 현지 직원을 내보냈다.
이런 세계 반도체 업계의 감산 발표는 지난해 1월 ‘치킨 게임’이 시작된 후 1년9개월 만의 일이다. 당시 512메가비트(Mb) DDR2 기준으로 개당 6달러 수준이던 D램 가격은 올 들어 1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올 2분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제외한 모든 업체가 적자로 돌아섰다. 시장조사 업체인 아이서플라이는 올 4분기 독일 키몬다는 매출액의 50%, 대만 업체들은 20% 안팎의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업체들의 감산이 가시화되면서 공급 과잉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하락세가 멈출 전망이다. 송명섭 CJ투자증권 연구원은 “엘피다와 파워칩의 감산 규모는 전 세계 D램 생산의 3.9% 수준으로 가격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는 물량”이라고 분석했다. 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시장점유율 1위의 삼성전자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선태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반등할 경우 투자를 많이 한 삼성전자 등 선두 업체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감산 계획은 없다”며 “기존 계획대로 올해 물량 기준으로 D램은 100%, 낸드플래시는 130%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PC 등 정보기술(IT)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지 않아 감산 효과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업체들이 생산량을 대대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내년 초까지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우 기자
◆치킨 게임=자동차로 절벽을 향해 질주해 먼저 핸들을 돌려 차를 세우는 쪽이 지는 경기. 겁쟁이(치킨)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끝까지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공멸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감산에 나설 때까지 생산을 늘려 압박하는 시장 상황을 설명할 때 쓰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