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돈 계산·날짜 잘 틀리면 치매 초기 의심
외상·종양·알코올 원인일 땐 완치 가능 조기에 관리·치료하면 상당부분 극복
|
|
|
치매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중앙포토] |
|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인의 축복을 받는 장수. 하지만 존재의 의미는 ‘생각하는 생명체’일 때 인정받는다. 생각의 틀이 와해되는 치매는 장수를 오히려 두려움으로 바꿔놓는다. 치매는 65세 이후 5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 오래 살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셈.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8.2~10.8% 선이다. 2007년 현재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480여만 명의 노인 중 40만 명이 치매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치매는 일찍부터 관리·치료하면 상당 수준까지 극복이 가능하다.
◆힌트가 무용지물인 망각의 늪=치매는 기억력과 언어 능력, 시간과 공간을 파악하는 능력, 판단력 및 계산 능력 등 모든 인지 기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뇌 질환’이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이상 신호는 기억력 감퇴다. 예컨대 친척 7순 잔치에 다녀온 지 며칠도 안 돼 ‘언제?’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런저런 정황을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만일 치매가 아니라 건망증이라면 그날 일어난 사건을 이것저것 들추면 잠시 후 “맞아, 내가 깜빡했다”고 대답한다.
건망증은 뇌에 저장된 사건을 제때, 신속하게 못 떠올리는 게 문제지만 치매는 사건 자체가 뇌에 입력되지 않아 떠올릴 일 자체가 없는 병이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증상 달라=치매는 노인병인 데다 초기에는 쉽게 눈치채기 힘들어 한동안 방치되기 쉽다. 통상 초기 단계는 4~5년간 지속된다. 주변에서 ‘좀 이상해졌다’고 느낄 정도지만 환자 혼자의 생활은 가능하다. 이 단계에선 최근 일은 잊어버리지만 옛날 일은 기억하며 말할 때 다소 머뭇거리며 분명한 명사 대신 ‘그것’을 즐겨 쓴다. 돈 계산·시간·날짜도 잘 틀리고 매사를 귀찮아하며 짜증과 의심이 많아진다(‘누가 훔쳐갔다’ ‘바람피운다’는 식).
중기(약 3년 지속)가 되면 옷 입기, 외모 가꾸기 등에 실수가 많고 살림 도구를 제대로 못 다뤄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실제 집 주소·전화번호·가족 이름·계절·알던 길·옛날 기억 등을 잊어버리고 엉뚱하거나 알아듣기 힘든 대답을 해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 의심이 심해져 배회·난폭·반복 행동을 보여 주변에서 치매를 인식하게 된다.
이후 말기가 되면 본인의 이름·출생지·배우자·자식 등을 전혀 모르고 간단한 지시사항도 따라하지 못한다. 말은 전혀 안하거나 하더라도 웅얼거려 대화는 불가능하다. 특히 거동이 힘들고, 대소변을 못가려 거의 누워지내다 보니 욕창·폐렴·요로감염 등 신체적 합병증이 빈발한다.
◆진단은 초기에, 예방은 젊을 때부터=그렇다면 치매는 인류가 감내해야 할 장수의 이면일까? 물론 아니다.우선 완치 가능한 치매가 있다. 외상·감염·종양·갑상선 질환·종양·알코올 등으로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경우인데 치매 환자의 10~15%가 여기에 해당한다. 원인을 제거하면 치매 증상도 사라진다. 치매의 조기 진단이 강조되는 가장 큰 이유다.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과 같은 혈관질환으로 인한 뇌혈관 손상도 치매를 초래한다. 전체 치매의 20~30%가 여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40세부터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심장병 등 혈관질환의 예방에 힘써야 한다. <표 참조>
일단 발병한 혈관성 치매도 조기에 발견해 뇌손상의 진행을 막으면 치매 진행은 막을 수 있다. 노인 우울증은 치매로 오진되기 쉬운 병. 다행히 약물치료 효과가 높아 우울증이 좋아지면 치매 증상도 호전된다.
가장 문제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전체 치매의 50%)도 조기 발견해 아세틸콜린(뇌의 신경전달물질) 농도를 높여주는 약이나 뇌세포 손상을 줄이는 약을 적절히 사용하면 1~2년은 병의 진행을 지연시킨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서울대병원 정신과 이동영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재홍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