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세라믹,그리고 Ferrite

[중앙일보] 단풍의 과학적 해석

FERRIMAN 2008. 10. 17. 08:52

기사 입력시간 : 2008-10-17 오전 2:26:16
[강찬수 기자의 환경 이야기] 꽃보다 고운 오색 가을 단풍 생존 위한 소리 없는 아우성
 오색실을 수놓은 듯한 고운 단풍이 반가운 가을입니다. 단풍은 아침 최저기온이 섭씨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들기 시작합니다. 푸른 나뭇잎이 울긋불긋 예쁜 옷을 갈아입지만 나무에는 복잡한 속사정도 있습니다.

단풍이 드는 것은 봄·여름 광합성을 맡았던 나뭇잎의 녹색 색소인 엽록소가 분해되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떨어져 잎에 당분이 쌓여 엽록소가 파괴되면 노란색·오렌지색 색소인 카로티노이드나 크산토필이 드러납니다. 은행나무·아까시나무·자작나무 등의 잎이 노랗게 물드는 이유죠.

단풍나무·옻나무·신나무·화살나무에서는 잎이 붉게 물드는데 이는 안토시아닌이란 물질 때문입니다. 안토시아닌은 가을에 새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봄부터 붉은색을 띠는 단풍나무 개량종에선 늘 안토시아닌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나무가 가을철에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안토시아닌을 만드는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태양빛으로부터 잎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게 제일 유력한 설명입니다. 안토시아닌이 없으면 나뭇잎이 햇빛에 취약해집니다. 안토시아닌은 엽록소가 파괴된 이후부터 낙엽이 질 때까지 사이에 잎을 보호하는 구실을 합니다. 나무가 겨울 동안 사용할 영양분을 뿌리에 저장할 시간을 벌어주는 거죠.

일부 학자들은 나무가 안토시아닌을 만드는 게 다른 종류의 나무를 독으로 공격하는 ‘화학전쟁’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듬해 봄 낙엽에서 안토시아닌 성분이 녹아 나오면 다른 종류의 나무들은 자라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대신 자신의 어린 묘목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단풍은 스트레스로 지친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그래서 단풍의 빛깔도 평지보다는 산지에서, 그리고 강수량이 적은 곳, 양지 바른 곳, 기온의 일교차가 큰 곳에서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최근엔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단풍이 늦게 들고 빛깔도 칙칙해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설악산·지리산·내장산이 아니라도 단풍 고운 곳은 많습니다. 가을 숲에서 겨울을 미리 준비하는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면 자연과 하나가 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강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