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세라믹,그리고 Ferrite

[사이언스타임즈] 철학과 과학은 똑같이 출발했다.

FERRIMAN 2008. 10. 21. 09:10

위대한 과학은 위대한 철학에서 아테네 학당 (16) 플라톤 ⑥ 2008년 10월 21일(화)

아테네 학당 사람들은 철학과 과학이 똑같이 출발했다고 주장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사고라는 형이상학적 철학과 삶이라는 현실의 과학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죠. 고대 그리스 철학도 그렇게 출발했고요.

역사적으로 볼 때 철학과 수학(넓게 보자면 과학)이 하나가 될 때가 두 번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시대입니다. 철학과 수학은 똑같은 것이었죠. 자연을 탐구하는 철학자와 과학자 다 마찬가지였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데카르트가 대표하는 16세기 합리주의입니다. 과학중심의 철학을 이끌어 낸 이론입니다. 과학과 기술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이론으로 철학과 과학은 일치돼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 과학의 통섭을 넘어 학문의 융합시대로 접어들었다. 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이 절실하다. 아테네 학당의 철학자들이 바로 그러한 접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와 16세기 합리주의 철학은 달라

그러나 과학과 철학을 보는 눈에 있어서 그리스 시대와 16세기 유럽의 합리주의는 판연히 다릅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철학을 과학의 상위개념으로 본 것이 그리스적 사고라고 한다면 합리주의는 과학적 사고를 철학적 사고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봤다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철학적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이용한 것이 고대 그리스라면 과학을 추종한 철학이야말로 가치 있는 철학이라고 주장한 것이 유럽의 합리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10x10이라는 계산이 있습니다. 당연히 100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100이 아니라 천도 되고 만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수학적 계산뿐만 아니라 자연을 이루는 흙, 불, 공기, 물과 같은 원소를 설명하는 이론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합리주의에서는 일절 여지가 없습니다. 10x10은 100이니까 철학 역시 수학적 명제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거죠. 흙과 수학,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합리주의는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철학입니다. 그것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수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죠.

▲ 플라톤은 위대한 수학자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본다면 16세기 서양철학의 근본이 된 합리주의에서 철학은 과학의 시녀가 되는 셈입니다. 사실 오늘날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분야에서도 과학적 접근은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논문의 경우도 설문조사, 그리고 그에 따른 확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거죠.

오펜하이머는 인도와 불교 철학에서 영감을 얻어

어쨌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위대한 과학은 위대한 철학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철학적 사고 없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나오지 않습니다. 20세기 위대한 과학자들의 내면을 찬찬히 뜯어 보면 그 속에는 그들만의 철학이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 양자역학의 선구자인 막스 플랑크는 양자의 개념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에게서 얻었다고 합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맨하탄프로젝트의 중심인물이며 핵폭탄 개발을 후회한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는 인도의 리그 베다와 불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현대과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창의적인 과학철학의 개념을 불어넣어 준 것은 플라톤입니다. 그의 수학을 바탕으로 한 형이상학적 철학은 위대한 과학자들을 탄생시켰습니다.

플라톤은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을 구분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지금은 수학이라는 말로 통합이 됐지만 정수론(number theory)과 로지스틱(logistic)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한 수학자로 통합니다.

“로지스틱은 돈을 버는 장사꾼이나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학이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수의 기술(art of numbers)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를 모르면 병력을 어떻게 배치할 줄 모르게 된다. 그러나 로지스틱과 달리 정수론은 철학자에게 맞는 수학이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변화라는 파도를 감지하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그려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분석철학은 플라톤의 영향

플라톤의 수학철학은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바로 독일의 프레게(Gottlob Frege)입니다. 그는 20세기 영미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분석철학의 원조로 통합니다.

그가 초기에 문제 삼았던 것은 순수수학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로서 수 개념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수학의 전체 체계가 정수나 자연수를 기초로 구성된다고 할 때, 바로 그 자연수가 무엇인가는 수학 자체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재발견한 사람이 위대한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입니다.

▲ 아인슈타인은 확률에 의한 과학을 플라톤에게 배웠다. 
철학을 계산했다는 프레게는 철학과 수학과의 관계를 놓고 이런 명언을 남깁니다. “Every good mathematician is at least half a philosopher, and every good philosopher is at least half a mathematician. 모든 훌륭한 철학자는 최소한 반쯤은 수학자여야 하고, 반대로 모든 훌륭한 수학자 역시 반쯤은 철학자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철학을 과연 계산할 수 있을까요? 면밀히 따지자면 계산을 못할 것도 없지요. 주관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 작업을 한 사람이 프레게이고, 그는 바로 이상주의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저 골방에 갇혀 어려운 수학과 방정식과 씨름만 한 과학자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 철학적인 논리와 비슷한 물리학 상대성이론을 아마도 발견하지 못했겠죠?

확률에 의거한 양자물리학 역시 플라톤의 철학에서

아인슈타인은 플라톤의 확률적 우주관에 기초한 철학에 매료되어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게 됐고, 머리가 너무 큰 양자물리학의 대가 닐스 보어 또한 플라톤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양자물리학과 확률과의 관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법칙은 뉴턴의 이론처럼 속도, 시간 질량, 에너지가 일정한 틀 속에서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만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 변수가 많다는 거죠.

세상의 이치를 대변하는 물리학은 뉴턴을 기점으로 끝났다고 보았죠. 그러나 일정한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변화가 있다는 것이 양자물리학입니다. 그 무한한 변화 속에서 확률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이론이 바로 양자물리학입니다.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난한 철학자나 과학자는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러나 플라톤을 비난한 철학자는 많습니다. 우선 정치 철학이 이상주의에 치우쳤다는 비난입니다. 민주주의가 부정한 도덕과 윤리를 외면한 전체주의적이고 독재적인 발상이라는 주장이죠.

니체, “플라톤은 한심한 양반, 전체주의자!”

<신은 죽었다>, <반 그리스도자>로 유명한 니체가 가장 앞장섰습니다. “Plato was a bore. I’m not upset that you lied to me. I’m upset that from now on I can’t believe you. 플라톤, 당신은 한심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오. 당신이 나에게 거짓말했다는 것은 별로 화가 나지 않소. 화가 나는 것은 지금부터 당신을 믿을 수 없다는 거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유명한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칼 포퍼(Karl Popper)도 플라톤을 우습게 생각하면서 비난합니다. 특히 포퍼는 그의 저서 <자유로운 사회와 그의 적,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에서 플라톤의 전체주의와 독재적인 발상을 지적하면서 비난을 가합니다.

이론은 항상 도전을 받습니다. 도전 속에서 새롭고 더 명확한 이론이 탄생합니다. 더구나 플라톤의 국가론처럼 튀는 이론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론은 맞다, 맞지 않다가 아닙니다. 그 이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플라톤의 이상정치, 플라토닉 러브. 아마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겠죠. 그러나 그의 주장이 이 시대에 어떠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 니체는 플라톤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전설 속의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해 처음 언급한 이가 바로 플라톤입니다. 이러한 플라톤을 보고 허황된 철학자라고 비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라진 대륙에 대해 누구한테 들은 플라톤이 대륙의 실재를 믿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과 신화를 실질적으로 믿고 탐구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더구나 노아의 방주와 함께 종교적으로 대륙의 침몰이 맞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조국의 패망, 존경했던 스승의 죽음, 숱한 전쟁과 고난. 이 속에서 플라톤은 마치 유토피아와 같은 피난처 아틀란티스를 이상향으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안식처는 어딘가요?

자연현상과 이치를 발견하는 과학에 대한 인간의 노력은 영원히 이어질 겁니다. 또한 인간에 내재해 있는 신화와 전설을 풀려는 욕망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과학과 철학, 다시 말해서 학문이란 똑같은 인간의 노력입니다. 그 노력 속에서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꽃피우게 되는 것 아닐까요?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8.10.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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