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지키기

[중앙일보]해외에서 인정 받은 신약들

FERRIMAN 2008. 11. 22. 11:24

기사 입력시간 : 2008-11-21 오전 12:15:14
[Cover Story] 해외서 인정받은 신약들 한국선 없어서 발만 동동 왜 ?
다국적 제약사“보험급여 너무 싸 공급 못 하겠다”
정부 “가격 대비 약효 경제성 따져야”
환자들 “비싸서 못 쓰고 구할 수도 없어”
#1. 30년 넘게 택시 운전을 하는 김모(62·서울)씨는 얼마 전 습성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다. 이 질환은 방치할 경우 2년 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는 중증 눈병이다. 그는 레이저 치료를 받고 항체주사도 맞아봤지만 그때만 반짝할 뿐 별 효과가 없었다. 의사가 마지막으로 권한 건 노바티스의 신약 ‘루센티스’였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이 약은 그러나 아직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증상이 악화돼 생업을 포기한 김씨는 한 차례 시술에 15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시각장애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이 약의 보험 적용만 기다리고 있다.


#2. 영국계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말기 유방암 치료제로 개발한 신약 ‘타이커브’를 국내 환자 187명에게 무상으로 공급해 왔다. 타이커브는 하루 한 번 먹는 유방암 치료 약물로, 말기 환자에게는 유일한 치료제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판매됐지만 국내에서는 올 5월 고가라는 이유로 보험급여에서 제외됐다.

국내 의료 현장에 신약이 잘 돌지 않는다. 정부가 지난해 의약품 선별 등재 제도(포지티브 리스트)를 밀어붙인 뒤 오리지널 신약을 갖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시판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약가와 약효를 평가해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약품에 대해서만 보험급여를 허용하는 것이다. 환자에게는 싸고 좋은 약을 제공하고, 의사에게는 합리적인 처방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 제도 도입 이후 건강보험 재정이 다소 건전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많다. 신약에 경제성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바람에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제품이 많은 것이다. 그 결과 제약사들이 출시를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출시를 하더라도 환자들이 비싼 약값을 몽땅 부담해야 한다. 실제 신약이 보험급여 판정을 받고 시판된 경우는 2005년 50개 신청에 36개였는 데 비해 지난해부터 올 8월까지는 52개 신청에 21개에 그쳤다.

미국 제약사 BMS의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약가 협상 과정에 가격 차가 너무 커 제품 출시 허가를 받은 후 올 5월 보험 약값을 결정받기까지 400일이 넘게 걸렸다. 당시 환자들은 임상시험에 참가해 의약품을 무상으로 공급받았으나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환자들은 고통을 그대로 감내해야 했다.

보험 약가를 받아놓고도 출시를 하지 않는 치료제도 상당수다. 얀센의 에이즈 신약 ‘프레지스타’가 그런 경우다. 당초 요구했던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보험 가격을 받은 얀센은 이 가격으론 남는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기부 형태로만 제공하고 있다. 이 가격으로 유통될 경우 다른 나라의 판매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한 임원은 “심사평가원이 시판된 지 얼마 안 된 신약에 대해 10년 정도 조사해야 나오는 사망률 자료를 요구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투입된 신약에 대한 보험급여 범위를 넓혀야 필요할 때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신약을 대접해 줘야 복제약에만 매달려온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이형기(약학대) 교수도 “신약을 사용하면 다른 의료 비용이 줄어든다는 조사도 있다”며 “정부가 약값을 지나치게 통제할 경우 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제한돼 국민의 건강 수준이 떨어지고, 반기업적 환경이 조성돼 모두가 패자가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이태근 보험약제과장은 “경제성 평가라는 제도가 도입된 후 보험급여 대상에서 탈락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한국의 복제약 값이 높은 게 사실인 만큼 경제성 평가를 통해 복제약 값을 내리는 방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심재우·김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