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 반도체 업계 현황

FERRIMAN 2008. 12. 17. 10:59

기사 입력시간 : 2008-12-17 오전 12:14:10
삼성전자 “칩 대신 생산해 드립니다”
새 성장동력으로 비메모리 위탁생산 뛰어들어
기존 라인 재활용도 장점… 미 자일링스와 계약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영역 파괴’에 나섰다. 특히 메모리보다 시장이 큰 비메모리, 이른바 ‘시스템 LSI’ 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일본 업체들은 대만·중국계가 장악해 온 위탁가공(파운드리) 분야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위탁생산도 환영=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세계 최대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업체인 자일링스는 대만 UMC에 외주해 왔던 칩 제조를 삼성전자로 바꿨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자일링스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공격적인 가격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위탁생산에 관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자일링스는 알테라와 함께 파운드리 분야의 큰 고객이다. 자일링스는 UMC·도시바와 거래하고, 알테라는 주로 대만 TSMC에 물량을 맡긴다. 2005년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시작한 삼성전자는 최근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본 유일의 D램 제조업체인 엘피다도 올해부터 UMC와 손잡고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엘피다는 이달 초 히로시마의 300㎜(12인치) 공장에서 노어플래시를 생산하기로 뉴모닉스와 계약했다. 지난해 비메모리 분야 진출을 선언한 하이닉스도 올 들어 이미지센서(CIS) 전문설계업체(팹리스)인 실리콘화일의 지분을 사들였다. 동부하이텍이 맡던 실리콘화일 칩 제조도 넘겨받았다.

이 분야의 강자였던 대만 반도체 업계는 강적을 만나 고전 중이다. 파운드리 시장의 40% 이상을 점한 TSMC조차 10월 매출이 지난해보다 36%나 줄었다. 4분기 매출 예상치도 700억 대만달러(약 2조8000억원)에서 650억 대만달러로 수정했다. 싱가포르의 차터드는 UMC 등 대만 업체와의 합병을 모색한다. 대만 반도체 업계는 “우리가 망하면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한국에 종속된다”는 논리로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메모리 중심의 종합반도체업체(IDM)가 파운드리 사업에 적극 나서는 건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12일 내놓은 올해 반도체 업계 순위를 보면 미국의 비메모리 업체인 퀄컴의 매출이 15% 늘어나며, 지난해 11위에서 8위로 올라섰다. 반면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는 인텔에 이어 2위를 지켰으나 매출은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하이닉스는 순위가 9위로 두 계단 떨어졌다.

또 한 가지, 파운드리 사업은 시장 규모가 만만찮으면서 기존 생산라인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크다. 올해 2600억 달러로 예상되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의 비중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시스템LSI 가운데 비중이 큰 PC용 중앙처리장치(CPU)·무선통신장비·휴대전화 모뎀 등은 미국 인텔이나 퀄컴·TI 등이 선점했다. 당장 이들과 경쟁하기보다 위탁생산 분야부터 공략한다는 게 메모리 업계의 전략이다. 파운드리는 시장 규모가 200억 달러가 넘어 D램과 맞먹는다.

여기다 미국의 세계 2위 CPU 업체인 AMD가 반도체 제조를 포기하고 설계에만 주력하기로 하면서 틈새시장도 커졌다. AMD는 시스템LSI 제품의 성능이 높아지면서 설비투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설계와 제조를 분리한 것이다. 기존 D램·플래시메모리 라인을 갖고 있는 메모리 업체가 파운드리에 나서기 유리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권오현 사장은 “올 들어 파운드리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비메모리 매출이 3분기에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매출의 20%를 비메모리 분야에서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김창우 기자

◆파운드리(Foundry)= 팹리스로 불리는 설계 전문업체의 주문을 받아 칩을 대신 생산해 주는 반도체 제조업체. 칩 설계에서 제조까지 모두 하는 곳은 종합반도체업체(IDM)라고 부른다.